ARTRAVEL TRIP.30
그 여행 참 맛있다
DELICIOUS VILLAGE
치즈케이크 위에는 라즈베리 시럽이 얹혔다. 간판도 없는 케이크 가게에 앉아 있던 이들은 십중팔구 골목을 지나다 우연히 들어오게 된 사람이거나, 그들이 데려온 친구, 아니면 그 친구가 다시 끌고 온 누군가였다. 이제 겨우 흰 머리 몇 가닥만 머리에 이고 있는 노인이 건반 뚜껑을 열고 연주를 시작한다. 목소리가 의외로 미성이라 깜짝 놀랐다. 케이크를 잘라 입에 넣었다. 달면서도 묵직한 뒷맛이 혀를 눌렀다. 눅진한 치즈향이 코끝을 감쌌다. 어디에도 비교할 수 없는 케이크라고 생각했다. 여러 번 방문해도 좀처럼 실망할 줄 몰랐다. 그 뒤로 무려 15년이 지난 후에야 나는 몇 달 전 다시 그 케이크 가게를 찾아갔다. 이제는 제대로 된 간판을 달고 있었고, 옆 가게까지 사들여 공사를 새로 한 덕에 예전의 몇 배 크기로 커져있었다. 점원들은 더 친절했고, 작고 오밀조밀 답답하던 테이블은 널찍널찍 놓였다. 손님들은 훨씬 많이 찾아와 빈 곳이 없었다.
그리고, 케이크는 전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맛이 없었다. 내가 떠났던 지난 15년 내내 그 가게를 다닌 폴란드 친구는 이 집 케이크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녀석에게만 해당되는 얘기다. 노인의 노래와, 좁은 테이블 위 가느다란 촛불과, 숨은 가게를 혼자 알고 친한 친구들에게만 소개하는 은밀한 도취가 없었다. 스물 세 살이라는 그때 내 나이의 외로움과 결핍도 이제 없었다. 맛은 공감각적인 심상이다, 여행이 그런 것처럼. 많은 여행은 맛을 통해 기억된다. 그때 거기 참 맛있었다. 이 말은 참 좋은 여행을 했다는 뜻이다. 비밀은, 우리가 훗날 그곳을 다시 찾아도 그때 그 맛만큼은 느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데 있다. 같은 셰프, 같은 재료, 같은 레시피라도 말이다. 첫 입의 그 순간. 그때 나를 감쌌던 모든 사연과 모든 사람과 모든 장면이 모여 바로 그 맛이 완성됐던 거니까. 여행이 그런 것처럼. 우리들 사랑이 다 그런 것처럼.
목차
ART
016 지구에서 가장 비싼 한 접시
소울 푸드
편집부
038 ITALIAN SLOW
이탈리아
백상현
054 THE MASTERS
마스터스
편집부
지구사용설명서
068 우리는 그럴 자격이 있다
페루
윤혜정
084 페루 백과사전
페루
편집부
094 페루行 여행인문학
페루
편집부
TRAVEL
100 기껏해야 니우로우멘
대만
정태현
114 일본의 부엌, 오사카
오사카
최갑수
148 초밥백과
일본
편집부
156 타이의 반전
태국
신예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