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라루스 시간여행자

벨라루스 시간여행자벨라루스│레이케이 고요를 찾아서 벨라루스의 면적은 한반도와 비슷하지만 공항은 국제, 국내선 할 것 없이 단 하나. 들어오고 나가는 문이 단 하나이다. 관광국가가 아니므로 벨라루스의 땅을 밟기 위해선 매우 까다로운 비자발급 절차를 거쳐야 한다. 따끔따끔한 눈빛의 이미그레이션을 통과 하고 나서 다행스레 얼음 같은 공기를 들이마신다. 벨라루스는 '화이트 러시아' 라는 의미로 ‘백러시아’로 불리는 순백의 나라. 1991년 소련에서 독립했다. 동쪽으로 러시아, 남쪽으로는 우크라이나, 서쪽으로는 폴란드를 끼고 있는 동유럽의 고요하고 소박한 나라다. 겨울이 되면 수도 ‘민스크’의 기온은 영하 30도까지 내려가며 애니메이션처럼 하얀 겨울왕국이 탄생한다. 밤이 되면 도심 안에서도 눈송이가 툭툭 떨어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민스크의 두 얼굴 공항에서 숙소가 있는 민스크 시내로 30분가량 버스를 타고 이동하면 다른 유럽국가와는 또 다른 느낌의 도시를 발견할 수 있다. 오밀조밀하게 높지 않은 건물들로 꾸려진 도시. 2차 세계대전 당시 지리적 요건으로 민스크를 포함한 벨라루스 9,000개의 도시와 그 안의 모든 선량한 국민들이 나치 군에 의해 그대로 불탔다. 이로 인해 국민의 3분의1이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고, 전 국토가 검은 재로 파괴되었던 아픈 역사. 민스크는 그 위로 새롭게 파란 새싹처럼 재건된 도시다. 그 중 타다 남거나, 타지 않은 오래된 유럽의 문화유산과 새로운 건축물들이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아름다운 도시지만 결코 사람들로 인해 북적거리지 않는다. 첫날 가볍게 저녁을 먹은 후 다시 바깥으로 나왔다가 민스크의 두 얼굴에 흠칫 놀랐다. 분명 낮 에 보았던 소소했던 도시가 순식간에 황금빛으로 변해 있다. 건물들은 금빛으로 반짝이고, 그 불빛들이 하나로 묶여 도시 전체가 거대한 황금 조각 같다. 손발 끝이 차갑게 저려 오는 것도 잊은 채 마냥 밤의 민스크를 걸었다. 마음이 간질거린다. 분홍빛 지평선 차를 빌렸다. 벨라루스는 그 넓은 땅덩어리에 산이 없다. 국토가 낮고 평탄하며 가장 높은 제르진스카야 산은 고작 해발 350m. 그 길이를 모두 이으면 91,000km에 달하는2만개의 하천과 1만 개의 푸른 호수, 그리고 한정 없이 펼쳐진 평지로 이루어진 땅이다. 이 말은 곧 듣도 보도 못한 태고의 대설원 위로 드라이빙이 가능하다는 의미. 현지인 친구는 갸웃거리며 연신 ‘Dangerous’를 연발하지만, 내 고집을 꺾지 못한다. 나라 전체가 얼어붙은 상태로 운전하기가 위험하긴 하지만, 도로에서 간간히 마주치는 벨라루스 사람들은 의외로 그 환경이 익숙한지 체인도 없이 눈 속을 미끄러져 나간다. 몇 시간이고 그 자리 그대로인 도로의 끝을 향해 차를 달려 나갔다. 안개가 깔리고 해가 지기 시작하면서 세상이 하늘과 땅 구분 없이 온통 분홍빛으로 물든다. 계획대로라면 족히 2000km는 운전해야 한다. 한국에서 가져온 싸구려 옥스(AUX)잭이 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침묵의 얼음성 깜깜한 밤 저 멀리서 힐끗힐끗 푸른 빛이 보인다. 첫 번째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아롱한 빛들이 선명하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더니, 아름다운 얼음성을 지어냈다. ‘미르성’은 유네스코가 2000년도에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한 곳으로, 15세기에 지어진 고딕건축양식의 아름다운 성이다. 얼마 뒤엔 르네상스 양식으로, 이어진 전쟁의 포위공격 뒤로 바로크 양식으로 확장, 재건축 되었다. 미르성의 형태는 이 성이 위치한 지역의 정치, 문화적 대립과 융합의 오랜 역사를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나폴레옹 시대에 폐허가 되고 100년 동안 방치되었지만, 현재는 충분히 복원되어 아름다운 호수를 끼고 넓은 평원 위에 고운 자태로 놓여 있다. 사람이 한 명도 없는 아름다운 중세의 성을 우리 두 사람이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것은 아직 유명하지 않은 이 나라가 허락하는 특혜다. 얼어붙은 호수를 한마디의 말도 없이 사박거리는 발소리로만 대화하며 걸었다. 덩그러니 놓여진 성 위로 별이 빼곡하다. 로드트립 다시 한참을 달렸다. 길 위에 세워진 조그마한 마을들을 거치게 되는데, 8-9시만 되어도 식당은 문을 닫아버리므로 운이 정말 좋아야 요기를 할 수가 있다. 코브린이라는 작은 마을에 도착해서 문득 보이는 사람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벨라루스 인구는 1,000만 명에 가까운데 이들 대다수가 수도인 민스크에 몰려있으니, 그 외 지역에서는 사람보기 귀한 상황. 벨라루스 로드트립의 매력은 끝을 보며 아무리 달려도 끝이 나지 않는 지평선에 있다. 그 지평선을 향해 한참 나아가다 보면 거대한 소나무 숲 안으로 들어가곤 한다. 숲이 국토면적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만큼, 숲을 가로질러서 약간은 어설프게 뚫어낸 도로들이 많다. 고개를 힘차게 꺾어 들어야 나무의 꼭대기가 보일 만큼 거대한 소나무 숲은 장관이다. 보랏빛으로 물들어가는 하늘을 정면으로 두고 소나무 숲 사이를 내지르는 기분을 즐기다 보면 한겨울 해가 빠르게 떨어진다. 도시를 벗어난 도로에는 가로등이 없으므로 오로지 빛이란 별빛과 자동차의 헤드라이트뿐이다. 그러다 저 멀리 정면에 낮게 길을 가로 막는 듯 빙벽이 보이는데, 가까이 가서 보면 얼음벽이 아니라 안개다. 동유럽 평원의 저지대국가인 벨라루스는 안개가 진득하게 부딪힐 것처럼 내려앉는다. 눈썹 사이를 잔뜩 찌푸려 핸들보다 고개를 더 앞으로 빼고서 운전을 하다 보면 또 금새 안개가 도망가듯 사라져 버린다. 지구의 또 다른 주인들 남서부 끝에 위치한 벨로베즈스카야 삼림은 유럽의 허파라고 불리는 유럽 최대 원시자연 보존림. 이 삼림의 중앙을 국경이 가로지르는데, 폴란드와 벨라루스 두 나라가 각각 국립공원으로 지정해서 보호하고 있다. 헤드라이트에만 의존해서 영 시원치 않은 가시거리를 헤치며 벨로베즈스카야로 향하는 중 급하게 차를 멈췄다. 집채만큼 거대한 그림자들이 불쑥 숲에서 튀어 나왔다. Zubr- 유럽들소! 차의 앞 유리를 덮어버리는 그림자가 이들이라는 것을 알아채기까지 제법 시간이 걸렸다. 드디어 만나게 된 거다. 벨로베즈스카야 삼림의 주인들. 유럽 전역에서 멸종되어 벨로베즈스카야 삼림에서만 볼 수 있는 유일한 동물로 키 3미터, 몸무게 1톤을 훌쩍 넘는다. 단지 혀의 힘만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고. 남자니까 불리하다. 열심히 스스로 침착했다. 그리고 발견한 덩치에 맞지 않는 순하고 초롱초롱한 눈동자. 사람의 경계심을 무너뜨리는 묘한 힘과 아우라를 가졌다. 세상이 진공처럼 고요해지면서, 내가 한없이 순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중세부터 이어진 무분별한 사냥 때문인지 자기보다 한참 작은 사람을 보고서도 흠칫하며 묵직하고 둔하게 도망간다. 그들의 걸음을 따라 나무에서 이따금씩 눈덩이가 떨어졌다. 해질녘 더 깊은 북쪽으로. 벨로베즈스카야 남서부 국경지대를 떠나 800Km가량 떨어진 북쪽 브라슬라브 호수지대로 향했다. 고대의 빙하들이 밀려나면서 50여개의 거대한 호수를 만들었고, 호수들은 수평선을 이루며 끝을 숨기는 곳. 하루를 작정하고 운전을 하면서 브라슬라브 지역으로 가까워질 무렵, 찻길 오른편 소나무 숲 사이로 노을이 나뭇가지에 걸려 반짝거린다. 해질녘 분홍색 안개가 잔뜩 깔린 호숫가를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단단히 얼어붙은 호수 위를 한참 달렸다. 발에 차여 흰 얼음 꽃이 피었다가 흩어진다. 하얀 캔버스에 색을 잘 골라 수채화를 담듯 카메라를 열심히 좌우로 흔들어가며 아무리 열심히 사진을 찍어도 이 색을 담아내긴 힘들다. 낚시꾼 브라슬라브 대호수. 새로 꺼내온 도화지 마냥 세상은 온전히 하얗다. 두 눈이 흰 빛에 겨우 익숙해지면 하늘과 땅을 구분 짓는 지평선 대신 하얀 설원 위에 점처럼 찍힌 낚시꾼들이 눈에 들어온다. 두껍게 얼어버린 호수에 열심히 구멍을 내더니 낚싯대를 쥐고서 한참 멈춰있는 사내에게 조심스레 다가가 인사를 건네자 돌아오는 말. 어이, 젊은이는 먼 나라에서 파견된 기자 같은 건가? 한 평생 검은 눈동자를 한 사람은 처음 본단다. 나는 그에게 이런 대답을 돌려줬다. 영하 31도의 얼어붙은 호수에서 ‘맨손’으로 낚시를 하는 사람은 나도 처음 본다고. 주름 사이에 낀 서리를 하얗게 부수며 빛나는 그의 미소. 카메라를 들이대자 “이러면 되는가?” 하고 포즈를 어색하게 취한다. 사내가 눈 속으로 하얗게 사라질 때까지 나는 그의 뒷모습을 지켰다. 눈이 바삭바삭 부서지는 소리만을 들으며 오점이 없이 설원 속으로 멀어지는 남자. 하얀 눈송이가 빈틈없이 호수 위를 자꾸 채운다. 결국 내가 찾고 싶었던 것은 이 고요. 이 텅 비고도 가득한 하얀 것들의 여백. 나는 이곳에, 시간을 지워나가는 여행을 하고 있다. 글│레이케이사진│레이케이 artravel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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