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이라는 이름의 축제

열정이라는 이름의 축제스페인│그라나다│변종모 살아 있는 모든 것은 뜨겁다. 뜨겁지 않은 것은 죽은 것이다. 살아가는 동안 뜨거워야 할 당신의 날들에 더운 열기를 불러일으키는 일. 그것을 열정이라 말한다.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을 향하여 가는 마음의 자세. 그 마음의 자세는 거세다. 움직이지 않고서도 방향성을 가지며, 도달하는 동안의 모든 고통, 슬픔, 행복도 마지막에서 피어나는 한 순간을 위하여 속도를 가중시킨다. 그대는 여러 번 넘어졌으나 한 번도 주저앉은 적 없다. 열정을 담고서는 잠시도 머무를 수 없다. 열정이 부추기는 삶. 그것을 향해 나아가는 매일매일이 인생의 축제가 된다. 그대는 날마다 그대의 가슴 속에 들어있는 그것을 위해 노래하며 춤을 추고 건배한다. 우리는 날마다 열정이라는 이름의 축제를 위하여 팡파르를 울린다. 그것 없이는 살아있지 않으므로. 뜨겁지 않은 삶은 그 누구도 원하지 않으므로. 붉은 열매 석류 버스가 그라나다(Granada)에 도착할 즈음의 새벽, 큰비가 내렸다. 어둠이 순식간에 씻겨 아침은 재촉되고 있었으나 12시간의 버스 여행은 비에 젖은 몸처럼 무거웠다. 안달루시아(Andalusia) 특유의 아름다운 풍경들이 달리는 버스에 바싹 당겨 앉던 시간. 풍경이 맑아지면서 점차 마음 속 잠들었던 선율들이 차례로 깨어난다. 길게 떨리던 기타 소리라든가 열심히 발을 구르며 소용돌이치는 치마의 끝자락. 급하게 박수를 치며 노래하던 울림이 가슴 속에서 기지개를 편다. 비는 점점 거세게 몰아붙여 여행자의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었지만 상관없다. 그 모든 것을 안고 빗속을 달리니 오히려 뜨거운 새벽이다. 오래전 봤던 어느 다큐멘터리 속으로 나는 향하고 있었다. 그라나다에 도착해서 짐을 푸는 순간, 나는 어쩌면 이 도시에서 오래도록 떠나지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그런 예감.좋은 자리에 앉아 보면 좋아지던 기분처럼. 그곳이 그랬다. 하얀 언덕 알바이신의 오밀조밀한 골목 끝자락에 숙소를 잡고 난 오후는 햇빛이찬란했다. 새벽 비가 말끔하게 씻어준 하얀 동네 알바이신. 베란다 문을 열고 오래도록 바라보던 풍경은 햇볕이 발끝으로 내려오는 시간까지도 계속됐다. 이곳에서 오래오래 지내면서 저 골목 하나하나를 다 걸어봐야지 하는 욕심은 그때 생겼다. 한낮의 그라나다 사람들은 활기찬데 소란스럽지 않았고, 잔잔한데 힘이 느껴졌다. 그 사이를 걷는 동안 모든 것이 좋았다. 늘 한 발쯤 느리던 나의 동작들과 오랜 여행자들이 가지고 있는 외로움의 시간들이 그들로 인해서 다시 여행의 처음처럼 술렁거리기 시작한다. 좋은 징조다. 자꾸만 경쾌해지던 산책의 시간에 스치고 가는 모든 풍경들이 내가 바라던 대로 진행됐다. 오래된 건물 사이로 시간이 만들어 낸 핏줄 같은 골목길. 우아하게 걸어가는 고양이와 고양이가 흘려 놓은 사뿐한 정적. 그 모퉁이를 돌면 이내 밝아지던 카페의 음악 소리. 작은 강 아래 모여 바이올린을 켜던 집시와 그 주위를 맴돌던 강아지. 그리고 그것을 노래하던 아름다운 여인의 움직임까지. 고요한데 힘이 넘치고 뜨겁게 다가온다. 모든 것이 좋았다. 이유 없이 좋았다. 내가 그 속을 걷고 있다는 그 이유만으로 그랬다. 여행이란 것이 이런 것일까? 특별하지 않은 시간에 특별하지 않은 풍경을 발견해 내는 것. 그리고 그것을 아주 특별하게 느끼는 것. 이 사소한 것들이 모여 어느 날 내 기억 속에서 쏟아질 것을 안다. 언제나 좋은 시간들은 빨리 흘러 하루를 재촉하는 해가 기운다. 근사한 알람브라 궁전으로 연결된 모든 풍경이 붉게 익어간다. 이것도 열정이라면 열정일 것이다. 하루를 온전히 살아내고 찬란히 저무는 태양을 마주하는 시간. 우리는 오늘 하루 이 낯선 공간에서 낯선 모습으로 잠시 스쳤지만, 나는 그 찰나의 순간에 그대들의 고요하고도 뜨거운 삶을 읽은 듯하다. 어디서나 반짝거리며 환하던 그대들의 얼굴과 발걸음과 소박한 웃음소리는 내게 없던 것이었으므로. 누군가 그랬다. 그라나다는 석류라는 뜻을 가졌다고. 붉은 껍질 속에 보석 같은 씨앗이 알알이 박힌 석류. 그라나다를 떠올릴 때마다 온몸에 새콤한 감각들이 살아나던 기분을 기억한다. 태양이 지평선에 닿으면 하얀건물들이 석류 빛으로 물든다. 하루 종일 새하얗게 빛을 내던 시간들이 붉게 물든다. 작은 풍경 하나하나가 영롱하며 절대로 홀로 빛날 수 없는 존재로 서로가 서로를 빛낸다. 잘 익은 석류가 탁! 하고 벌어져 순식간에 알알이 빛을 내는 것처럼. 적어도 이 시간에 삶의 우울이라든가 노여움은 없어야 하겠다. 누군가 지금 그렇다면 그곳으로 가라고 등을 떠밀고 싶다. 그곳에 도착한 누구라도 나처럼 생각하게 될 테니까! 당신도 그곳에서는 쉽게 떠나지 못하게 될 거라고. 당신의 가슴 속에 보석처럼 박힐 그곳의 풍경들을 당신의 일상으로 만들어 보라고 함부로 말하고 싶어졌다. 뒷 골목의 축제 담배를 나누어 피우던 한 무리의 집시들 속에서 유난히 눈에 띄던 그녀는 메인 무용수였다. 기울어진 향나무 곁에 꼿꼿하게 서서 준비운동을 하던 그녀의 입에서는 여전히 담배 연기가 피어나고 담배가 다 타들어가는 동안 여러 번 자세를 바꿔가며 온몸의 구석을 확인하는 듯했다. 대성당 앞 골목에는 오후의 햇살을 받은 대리석 바닥들이 잘 닦아 놓은 유리잔들처럼 빛을 내고 몇 마리의 비둘기들이 박수를 치며 날아올랐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멈춘 시간은 바로 그때가 아니었나 싶다. 아름다운 구슬 자루가 가슴팍에서 쏟아져 내리는 것처럼 날카롭거나 부드러움을 반복하는 기타 소리가 대리석 바닥 위로 쏟아졌다. 그래도 아무렇지 않은사람들과 그 사이에서 당황스럽지만 그것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보고 싶어 골똘한 사람처럼 움직이지 못하던 시간. 자루가 터진 듯 쉴 새 없이 이어지던 기타 소리를 주워 담느라 정신이 없다. 담배를 피우던 여자는 기타 소리 위에 뛰어들었고, 담뱃불을 붙여주던 여자는 박수를 치며 집시의 소리를 깨웠다. 여전히 아무렇지 않게 길을 가는 사람들과 멈추어 자리를 만드는 사람들 사이에 서서 나는 어찌하지 못한다. 길을 잃지 않았지만 가던 길을 멈추고 내가 돌아온 길을 둘러본다. 갑자기 플라멩코(flamenco) 공연장으로 변해버린 골목에 서서 생전 처음 공연을 보게 된 사람처럼 어색하고 놀라운 마음이 크다. 허공을 향해 소용돌이치는 그녀의 손목은 한낮의 태양을 휘저어 끌어당겼다가 잠시 멈추는가 하면 여전히 광야를 달리는 듯 두 발은 쉬지 않는다. 그녀의 모든 표정은 그녀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물려받은 것처럼 흉내 낼 수 없고 귀하다. 아! 이렇게도 빠르고 이렇게도 힘 있는 춤이라니. 남자가 다가서면 여자는 잠시 뒤로 물렀다가 스치기를 반복했다. 둘은 절대로 만나서는 안 될 사이였는지 함께하는 순간이 짧다. 모든 것이 순간처럼 간결한데 더군다나 애틋하다. 그러나 단 한 번도 서로가 서로에게서 떨어진 적은 없다. 그들의 시선은 서로의 몸을 묶고, 각자가 각자대로 자유로우면서도 늘 함께이다. 사랑이라는 것이 그런 것일까? 가까이 밀착돼 서로에게서 떨어지지 않는 게 아니라, 스치는 잠시의 순간에 모든 것을 다 허용하고 용납하며 받아들이는 자세. 사람들은 박수 한 번 칠 기회도 못 가지고 계속 이어지는 플라멩코에 넋을 놓았다. 그들을 둘러싼 관객들은 모두가 한 마음이었으리라.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열정. 길을 가던 사람들은 그 열정이 새어나가지 못하게 담을 만들고 둘러서서 박수를 보낸다. 나도 내가 축복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동원해 그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누구든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시간이다. 그라나다에 도착한 다음날부터 매일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그들의 공연을 봤다. 기껏해야 동전 몇 닢을 던져주는 것으로 고마움을 대신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축제. 그 열정의 축제 앞에서 오래도록 자리를 뜰 수 없었던 이유는 나는 단 한 번도 그런 눈빛을 가져 본 적이 없어서라고 말하고 싶다. 사람들이 알람브라 궁전에 열광하고 대성당에 감탄을 하며 그라나다가 품고 있는 모든 근사한 볼 것들에 만족을 하는 동안 내가 오롯이 그들의 곁에서 오래도록 머무를 수밖에 없는 이유. 그들이 뿜어내는 힘의 방향은 거대한 것이어서 누구도 쉽게외면할 수가 없다. 고요한 골목을 순식간에 축제의 무대로 만들던 그 힘을 감탄한다. 그렇게 훔칠 수도 가져 갈 수도 없는 그들의 행위 앞에 넋을 놓을 수 있는 나는 행운이었고 그 시간이 좋았다. 미처 본 적 있는가? 내가 나로 살면서 나는 무엇에 미쳐 본 적 있었던가? 그녀의 허공 위로 뜬 손가락에도 땅을 울리는 발뒤꿈치에도 느껴지던 열정 앞에서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춤을 전혀 모르지만 그 순간 그들이 만들어내는 열정 앞에서 모든 것을 알 것 같았다. 그 순간을 만들기 위해 그들이 흘렸을 땀의 시간을, 그리고 자신과 자신 사이 주고받았을 외로움의 시간을 알것 같았다. 그 기나긴 시간을 거침없이 꺼내놓는 순간의 축제에 나는 열광한다. 무대도 없고 조명도 없는 곳. 성당의 담벼락이 공연장이 되고, 오래된 길거리가 무대가 되는 곳. 하지만 그들만이 전부가 되던 시간. 골목 깊숙하게 퍼져나가던 뜨거운 온도. 열정이란 그렇게 뜨거운 것이다. 뜨거운 것은 언제나 축제를 만든다. 열정은 축제와 닮아있다 사람들이 빠져나간 골목은 갑자기 파티가 끝난 시간처럼 잠시 적막했지만 내 마음은 여전히 술렁거렸다. 쉽게 진정되지 않는다. 검은 중절모에는 작은 단위의 동전들만 빛을 내고 있지만 여전히 풍요로운 오후다. 그녀의 표정이 그랬고 그들의 표정이 그랬다. 누구의 삶인들 가벼울까? 누구의 행복인들 굶주림을 바랄까? 무거워도 삶이듯 배부르지 않아도 행복의 순간은 자주 있다. 오늘 하루, 지금 이 시간을 위하여 혼신의 힘을 다 했으니 동전 하나의 삶이라도 귀한 것이며 크지 않아도 위대하다. 사람들의 큰 박수소리를 챙겨 떠난 그들의 뒷자리는 휑하고 넓었지만 내일을 또 기대하게 만든다. 오후의 길거리 공연을 끝낸 사람들은 각자 자신이 일하는 밤무대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고 했다. 어느 날 밤, 알람브라 궁전을 끼고 흐르는 강둑의 작은 공연장에서 다시 만난 기타리스트는 한낮의 길거리에서 보다 한층 더 빛을 발하고 있었다. 작은 동굴 공연장에서 이루어지던 그 무대에서나 무대가 없던 길거리에서나 여전히 하늘의 별처럼 맑고 투명한 소리를 사람들에게 전하고 있었으며 작은 공간을 우주로 만드는 힘이 있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기타리스트가 꿈이었다던 그는 이제 날마다 꿈을 실현시키고 산다. 그가 소개하는 멤버들 모두가 그의 표정을 닮았다. 스스로 좋아서 모인 사람들이라고 했다. 그들 중에는 어릴 적부터 친구도 있었고 공연을 하면서부터 만난 사람도 있었지만 공통점은 단 하나. 플라멩코로 하나가 된 사람들이었다. 순수하게 웃는 웃음의 크기와 정중하게 객석을 향하는 그들의 인사가 아름답게 빛나던 시간이었다. 플라멩코 공연에는 기본적으로 서너 명의 공연자가 필요하다. 춤을 추는 사람과 춤을 끌고 나가는 가수와 그 모두를 하나로 묶는 기타리스트. 때로는 춤을 추는 사람이 두 사람이거나 한 사람이거나 할 뿐 더 많은 사람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어디서든 그들만 있으면 그곳은 꽉 차는 느낌이 들었다. 짧은 공연을 위해 그들 이 쌓아 올렸을 수많은 시간에 사람들은 박수를 친다. 눈앞의 광경에 사람들은 박수를 치지만 그들은 눈에 보이지 않던 시간들을 보상받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들의 무대를 보노라면 그 시간만큼은 나도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그들 중 한 명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터무니없는 상상을 하면서 축하를 보낸다. 사람들은 그래서 박수를 치는 것이리라. 그들에게 박수를 치지만 동시에 자기 안에서 살아나는 어떤 힘을 자축하며 함께 축하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열정이란 이렇게 거세다. 순식간에 축제를 만드는 힘을 가진다. 각자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일. 그것으로 보상받는 크기가 아주 작다고 할지라도 멈출 수 없는 이유는 그 누구보다 스스로가 가장 먼저 행복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축제는 자축으로부터다. 먼저 내가 나에게 축하할 수 있도록 마음을 다하며 사는 일. 그것이 커지면 결국 밖으로 새어나오는 빛처럼 환한 것. 사람들은 그것을 발견하고 기쁨의 박수를 친다. 그것이 진정한 축제의 의미다. 그래서 열정은 축제와 닮아있다. 지금 당신이 흘리는 땀. 어느 햇볕 좋은 날 툭하고 터지는 석류처럼 그 안에 담겨 있는 많은 생각들이 빛을 발할 때 축제가 되리라. 그 축제에 누구보다 자신이 가장 행복하리라. 당신의 가슴속에 들어 있는 반짝이는 것들을 위해 당신은 오늘도 묵묵히 걷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런 당신을 위해 나는 충분히 박수칠 준비가 돼있다. 당신의 박수소리그 근거는 과거에 그대가 앓았던 열병의 온도. 그것이 뜨거울수록 미래에 들려올 박수소리는 커진다는 것을 당신도 안다. 그대, 외로워 마시라. 그대가 앓고 있는 모든 것들이 훗날 그대를 축복할 것이다. 그래서 그대는 지금, 조금 더 앓아도 좋을 것이다. 글│변종모사진│변종모 artravel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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