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 페스타와 여행자의 밥카잔락, 불가리아, 신예희 어렵소 키릴문자 키릴과 그의 형 메토디우스, 왜 이렇게 어렵게 만들었냐 위로는 루마니아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고 왼쪽 아래로는 그리스, 오른쪽 아래로는 터키와 맞닿은 나라. 세계 지리 마니아가 아니고서야 자신 있게 선뜻 답하기 어려운 곳이다. 하지만 '요거트와 장수 마을로 유명한 나라'라는 힌트를 더한다면? 맞습니다. 불가리아! 그만큼 생소한 곳이지만 왠지 가보고 싶다는 생각에 무작정 항공권부터 예약한 후 여행 정보를 수집하는데, 아차차, 첫 단계부터 난관이다. 불가리아의 언어인 키릴(Cyrillic) 문자는 로마자 알파벳에 익숙해 진 눈에는 몹시 생소하다. 한번 볼까? 국가명 불가리아(Bulgaria)는 България, 수도 소피아(Sofia)는 София다. 눈에 영 들어오지 않으니 큰일이네! 세끼 밥이라도 챙겨 먹으려면 기본적인 표현 정도는 익혀 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책상 앞에 앉아 키릴 문자를 하나씩 끄적거렸지만 역시나 쉽지 않다. 불가리아를 비롯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몽골 등에서도 두루 사용하는 키릴 문자는 약 9세기경 동방 정교회 사제인 키릴과 그의 형 메토디우스가 사이 좋게 머리를 맞대고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문자 창제의 노고를 치하하기는커녕 왜 이렇게 어렵게 만들었냐며 앙탈을 부리고 싶지만, 벼락을 맞을까 두려우니 마음을 다잡고 다시 읽고 쓰기 연습에 몰두해본다. 외국인들의 눈에 우리의 한글도 이렇게 어려울까? 이렇게 그림 같은 키릴 문자가 눈에 서서히 익어갈 무렵 드디어 출국일이 다가와 가방을 꾸렸다. 한국과 불가리아 사이엔 아직 직항 항공편이 없어, 많은 여행자가 비교적 저렴한 아에로플로트 항공을 타고 모스크바에서 환승하는 방법을 택했다. 길고 피곤한 여정. 수도 소피아에서 잠시 머물다 곧 중부의 소도시 카잔락(Казанлък)으로 이동한다. 여기가 드디어 장미의 계곡 넓은 들판과 계곡을 온통 분홍빛으로 뒤덮었다 해마다 6월 첫 번째 주말이 되면 이 작은 도시는 전 세계에서 몰려든 여행자들로 북적인다. 1903년부터 매년 빠짐없이 열린 장미꽃 수확 축제기간이기 때문. 시내 곳곳은 장미꽃(물론 생화) 장식으로 가득한데, 그 향기를 몇 번 킁킁 맡는 것만으로도 홀랑 반하게 될 만큼 근사한 내음을 풍긴다. 과장이 아니라 정말 그렇다. 카잔락은 불가리아 중부, 일명 ‘장미의 계곡(Розова долина)’이라는 로맨틱한 이름을 가진 지역에 위치한 도시다. 장미밭의 토양 관리, 재배와 수확, 장미 오일 증류 작업과 수출 등 장미의 계곡 지역과 관련된 중요한 산업 대부분이 이곳 카잔락에서 이루어진다. 한마디로 이 지역의 중심 도시인 셈. 사실 카잔락은 과거 공산주의 정권 시절엔 무기 생산으로 유명한 도시였다. 꽃과 살상 무기의 묘한 조화다. 물론 장미 재배의 역사가 훨씬 긴데, 무려 16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향에서 장미 재배 사업을 하던 한 터키 상인이 이 지역을 방문했는데 낮은 산으로 사방이 둘러싸인 지형이며 강수량과 풍량까지 장미 재배에 무척 적합하다고 판단, 고향에서 가져온 장미 모종을 시험 삼아 심었다. 이 상인은 대단한 눈썰미의 소유자였던 모양인지 그의 장미는 금세 무럭무럭, 아주 잘 자라 넓은 들판과 계곡을 분홍빛으로 뒤덮었다. 문익점이 따로 없다. 그렇게 수 세기에 걸쳐 이 지역의 특산물로 자리매김한 장미는 현재 전 세계 장미 오일 시장의 약 80%를 책임지고 있다. 세계의 수많은 화장품 회사들이 스킨케어 제품과 향수, 보디 용품에 앞다투어 불가리아산 장미 오일을 사용하는가 하면, 향초를 비롯한 아로마 테라피 시장도 무척 넓으니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그 수요는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뿐인가, 다양한 음식에서도 장미 오일은 그 존재감을 거침없이 뿜어낸다. 얇디 얇은 꽃잎에 설탕을 듬뿍 넣어 조린 장미꽃 잼을 필두로 향긋한 리큐어, 요거트와 아이스크림, 초콜릿과 찻잎 등 장미 오일이 슬쩍 스치고 지나간 이런 식품들은 카잔락의 기념품 판매소에서 일 년 내내 언제나 쉽게 만날 수 있는 것들이다. 물론 장미꽃 수확 축제 기간에는 한층 더 열렬히, 활발히 판촉 활동을 한다. 시내 중심부의 광장 주변을 따라 걷다 보면 온 사방에 가득한 수많은 노점에서 모두 장미 향의 그 무언가를 팔고사느라 정신이 없다. 가장 인기 있는 것은 역시 향수. 오가는 사람들에게 열심히 뿌려대 사방이 장미 향수 냄새로 가득하다. 연분홍 꽃잎이 팔랑팔랑 이곳이 바로 세계 최대의 장미밭 장미꽃을 수확하는 모습을 직접 보고 싶다면 서둘러야 한다. 택시를 타고 카잔락 시내에서 3-4km가량 떨어진 넓은 꽃밭에 도착하니 아직 해가 뜨기 전이라 어둑어둑하다. 카잔락을 비롯한 장미의 계곡 전역에서 주로 재배하는 장미는 연한 분홍색의 다마스커스(Damascus rose) 품종이다. 흔히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장미와는 달리 꽃잎이 아주 연하고 야들야들한데, 아주 가벼운 바람에도 팔랑거릴 정도. 그 얇은 꽃잎이 겹겹이 나 있어 귀족적이고 호사스럽다. 세계에서 가장 넓은 장미밭으로 알려진 이 꽃밭에 연분홍빛 다마스커스 장미들이 강한 향기를 내뿜으며 가득히, 소담스럽게 피어있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어둑어둑한 가운데 사람들이 띄엄띄엄 흩어져 꽃송이를 따 모으고 있다. 장미꽃 수확은 새벽 네댓 시쯤 시작해 해가 뜨기 전까지 재빨리 이루어진다. 해가 떠올라 기온이 상승하면 장미 향기가 휘발되어 버리기 때문에 그전에 작업하는 것이 필수다. 뿐만 아니라 당일 수확한 꽃은 바로 증류하지 않으면 역시 향기가 날아가 버려 상품 가치가 하락한다. 하나부터 열까지 무척 바쁜일이다. 혹시 꽃나무에 피해라도 입힐까 무척 조심스럽게 밭으로 들어가 걷는데 꽃송이를 수확하던 사람들이 싱글싱글 웃으며 반겨준다. 가무잡잡한 피부와 뚜렷한 이목구비, 그리고 무엇보다 친화력. 무뚝뚝하고 시크한 불가리아인과는 사뭇 다른데, 혹시나 싶어 어설픈 터키어로 인사를 건네니 무척 기쁘게 답한다. 역시 터키 사람들이구나. 혼을 실은 손짓 발짓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사진을 찍다 보니 어느새 오늘 작업이 마무리된다. 땀방울을 뚝뚝 떨어트리며 일일이 손으로 딴 장미 송이가 커다란 비닐 포대로 몇 십 개씩 쌓인다. 장미 수확이라고 하면 예쁜 등나무 바구니에 한 송이 한 송이 곱게 따 모으는 것을 상상했는데 현실과 꿈은 다르다. 향기가 휘발되는 것을 조금이라도 막는 게 가장 중요하니 비닐 포대에 담아 입구를 꽁꽁 싸매어 증류소로 재빨리 실어 날라야 한다. 오일 1g 분량을 추출하기 위해선 평균 3천여 송이의 장미 꽃이 필요하다니 지금 여기에 쌓인 이 많은 꽃도 곧 순식간에 스러질 것이다. 일일이 사람 손길이 닿아야 하는 중노동이라 불가리아인 대신 상대적으로 저임금 노동이 가능한 터키인들이 이 일에 주로 종사한다. 새벽부터 아침까지, 하루 4-5시간가량의 작업을 통해 수확한 꽃의 무게를 달아 그에 맞는 임금을지급받는데, 보통 한 사람당 20kg 가량의 장미를 수확해 7-8유로의 수입을 올린다. 우리 돈으로 만원 남짓한 저임금이다. 장미의 여왕부터 꽃의 소년까지 차가운 불가리아 사람들이지만 의지가 활활 타오른다 연한 분홍빛의 다마스커스 장미로 가득한 비닐 포대를 잔뜩 실은 트럭이 장미 밭을 떠나고 해가 쨍하게 떠오르자 곧 축제의 메인이벤트가 시작된다. 어디선가 전통 의상을 차려 입고 장미꽃 목걸이를 목에 건 소년, 소녀들이 꽃바구니를 팔에 걸고서 생글생글 밝게 웃으며 기꺼이 모델이 돼준다. 찰칵찰칵, 사방에선 카메라 셔터 소리가 정신 없이 울린다. 옆에선 불가리아 전통 악기를 연주하는 악단과 전통 춤을 선보이는 무용수들로 시끌벅적하다. 모두 카잔락을 중심으로 하는 이 지역 주민들의 열정적인 자원봉사다. 조금은 차가운 불가리아 사람들이지만 축제 기간만큼은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겠다는 의지가 활활 타오른다. 축제의 평판이 좋을수록 장미 오일의 가치도 더 높아질 테니 이쯤이야 문제없겠다. 장미꽃 수확 축제는 불가리아의 축제 중 역사와 규모, 인지도 면에서 손꼽히는 행사라 자국과 주변국의 취재 열기가 뜨겁다. 미인대회를 통해 선발된 '장미의 여왕'도 아름다운 드레스 차림으로 우아한 미소를 만면에 띄운 채 손을 살랑살랑 흔들며 환호에 답한다. 물론 이런 자리에 정치인이 빠질 수 없다. 근사한 양복을 쫙 빼입고 사방에 연신 악수를 청하는 모습에 슬쩍 웃음이 난다. 우리나라나 불가리아나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잠시 카메라를 내리고 주변을 둘러보는데, 무료해 보이기라도 했는지 곧 전통 의상 차림의 소년과 소녀가 다가와 함께 사진을 찍을 것을 친절하게 권한다. 불가리아의 전통 의상은 무척 색이 화려해 자연 풍경과 기막히게 어우러진다. 지역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여성의 경우는 일반적으로 하얀 블라우스에 새빨간 원피스를 덧입고 선명한 녹색의 앞치마를 두른다. 남성은 빨간 천으로 허리를 장식한 통넓은 검은 바지 차림이다. 모든 의상에는 소박하고 정겨운 꽃무늬 자수를 정성 들여놓고, 동전 모양의 둥그런 금속 장식을 잔뜩 달아 화려함을 더한다. 물론 걸을 때마다 챙강챙강 소리도 난다. 역사와 요리의 아이러니 물론 그런 소리를 대놓고 하면 불가리아인들은 발끈하지만 이 근사한 차림으로 사뿐사뿐 장미 나무 사이를 다니며 꽃을 따 곱게 짠 등나무 바구니에 한 송이 한송이 모으는 것, 아마도 나를 비롯한 많은 이방인이 막연히 생각하는 불가리아의 장미꽃 수확 작업일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몇 시간 전에 보았듯 터키인 노동자들이 비닐 포대에 꽃송이를 꽉꽉 눌러 담은 후 그 대가로 무척 낮은 임금을 받는다. 이상과 현실의 차이다. 특히 불가리아와 터키 사이의 길고 얄궂은 역사를 생각하면 더욱 아이러니하다. 불가리아는 14세기부터 500여 년에 걸친 긴 시간 동안 오스만투르크, 즉 터키의 지배를 받았다. 독립을 향한 격렬한 저항과 그에 맞서는 학살 정책. 길고 끔찍한 역사가 이어지다 1878년 정식으로 독립했지만 불가리아인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앙금이 두텁게 쌓여 대를 잇고 있다. 하지만 그 세월 동안 알게 모르게 서로 문화적 영향을 주고받았는데, 특히 음식문화에서 그 흔적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두부를 꼭 닮은 새콤하고 포슬포슬한 흰색 치즈 시레네(сирене)만 해도 터키의 베야즈 페이니르(Beyazpeynir)와 무척 흡사하다. 물론 그런 소리를 대놓고 하면 불가리아인들은 발끈하지만. 터키와 비슷하다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 시레네는 옛날 옛적 고대 트라키아 왕국(지금의 불가리아)에서 처음 만든 치즈라고! 한편, 불가리아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진득하고 걸쭉한 요거트 키셀로 믈라코(Кисело мляко)는 터키의 요우르트(yoğurt)와 판박이다. 터키 사람들은 그들이 최초로 요거트를 개발했다며 으쓱거리고, 불가리아 사람들은 터키인들이 불가리아를 침공해 요거트 박테리아를 강탈해 간 거라고 핏대를 세운다. 이런 싸움에 정답이 있을까? 그저 모른 척, 딴청을 하며 맛있게 먹는 것이 최고다. 사실은 불가리아와 터키의 이웃 나라 그리스에도 거의 흡사한 음식들이 있다. 바로 그릭 요거트(γιαούρτι)와 페타 치즈(φέτα) 다. 한편 사르미(сарми)도 빼놓을 수 없는데, 소금과 허브로 양념한 쌀에 다진 고기와 양파를 섞어 살짝 익힌 후 포도잎이나 양배추 등 넓적한 채소에 올려 돌돌 말아 찜 냄비에 착착 집어넣고 폭 익힌 음식이다. 불가리아의 여느 음식들이 그렇듯 다양한 허브와 향신료가 듬뿍 들어가는데, 옆 나라 터키에선 사르미라는 이름에 점 하나를 콕 찍어 사르마(Sarma)라고 부른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 우리가 오리지널 불가리아와 터키, 두 나라 모두 자기네 것이 원조라고 다진 고기에 향신료를 팍팍 넣어 차지게 반죽한 다음 네모지고 길쭉한 막대기 모양으로 빚어 숯불에서 지글지글 구워낸 케밥체(кебапче)는 또 어떤가. 한 입 베어 물면 후추와 강황, 파슬리 등의 알알하고 향긋한 향이 입안에 폴폴 퍼지는 멋진 음식 케밥체는 터키의 케밥(kebab) 그 자체다. 케밥체와 거의 동일한 재료를 사용하되 햄버거 스테이크처럼 둥글넓적하게 빚어 구운 것은 쾨프테(кюфте)인데 이것 역시 터키의 쿄프테(köfte)를 꼭 닮았다. 케밥체도 쾨프테도 모두 불가리아의 크고 작은 식당 메뉴에서 절대 빠지지 않는 흔한 음식들인데, 꼭 식당이 아니더라도 맛을 볼 기회는 아주 많다. 정말 많다! 시장이라던가 기차역 근처, 버스 터미널 주변등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이라면 케밥체와 쾨프테를 지글지글 구워 파는 노점을 무척 쉽게 만날 수 있다. 말하자면 광화문 사거리에서 스타벅스를 발견하는 정도의 확률이다. 좀 더 든든하게 먹으려면 기다란 빵을 하나 추가해 반으로 슥슥 가른 다음 그사이에 케밥체나 쾨프테를 끼우고 새콤 매콤한 토마토 소스라던가 요거트 소스 등을 입맛에 맞게 뿌리면 한 끼 식사로 딱이다. 불가리아와 터키는 달콤한 디저트류 역시 상당 부분 공유한다. 터키쉬 딜라이트(Turkish delight)라는 애칭으로 잘 알려진(물론 불가리아인들은 '불가리아 딜라이트'라고 표현한다) 쫀득한 젤리 로쿰(локум)은 전분에 설탕을 문자 그대로 때려 부어 만든 것이라 몸서리쳐질 만큼 달다. 로쿰보다 한 수 위의 단맛을 자랑하는 할바(халва) 역시 터키의 전통 디저트이기도 한데, 밀가루에 기름이나 버터, 설탕을 넣고 약한 불에서 살금살금 끓이다 참깨라던가 피스타치오, 헤이즐넛, 호두와 같은 기름지고 고소한 견과류를 듬뿍 넣어 굳힌 음식이다. 굳혔다고는 하지만 완전히 딱딱한 형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부드러운 캐러멜, 녹진녹진한 엿과 같은 상태라 치아에 마구 달라붙는다. 로쿰이든 할바든 모두 잇몸이 아릴 정도로, 머리가 띵해질 정도로 달다. 그리고 불가리아와 터키, 두 나라 모두 자기네 것이 원조라고 목청 높여 싸운다. 아, 시끄러워! 이건 정말 최고의 돼지다 불가리아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 그래, 나는 이제 준비됐어 이쯤 되면 두 나라의 음식문화가 너무 비슷한가 싶지만 실은 아주 강력하고도 결정적인 한 방이 있다. 바로 돼지고기다. 터키의 국교인 이슬람교는 돼지고기 섭취를 원칙적으로 금하고 있어 닭고기와 쇠고기, 양고기 등 다양한 재료로 무궁무진한 음식을 창조해 내면서도 돼지고기로 만든 것만큼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반대로 불가리아는 돼지고기가 큰 사랑을 받는 나라다. 여행 첫날, 붙임성 있는 숙소직원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난 불가리아에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왔어. 여긴 뭐가 제일 맛있어?"라고 물으니 직원 왈, "그래? 돼지고기 좋아해? 먹을 준비됐어?"라고. 그렇다. 불가리아에선 고기 중에서도 돼지고기가 최고의 대접을 받는 것이다. 그 어떤 고기보다도 돼지고기의 질이 좋다. 살코기도 내장도 국물 요리도 모두 일품이다. 여행 가이드북의 음식 부분에도 ‘pork is king(돼지고기가 왕이다)’라고 쓰여 있을 정도니 말 다했지. 독특한 점은 고기의 종류를 막론하고 살코기 못지않게 다양한 부위의 내장 요리가 무척 인기 있다는 것이다. 불가리아의 동네 정육점엔 우리나라의 마트에서는 쉽게 보기 힘든 온갖 특수 부위들이 빨간 조명 아래서 반짝반짝 싱싱한 기운을 뿜어낸다. 식당의 메뉴판엔 돼지의 무엇 무엇, 양의 어디 어디를 볶고 졸이고 굽고 데쳤다는 음식이 가득하다. 축제 인파의 틈바구니에서 몇 시간이나 춤추고 노래하고 사진을 찍느라 지친 몸엔 고기가 약이다. 장미밭을 빠져나와 카잔락 시내의 분위기 좋은 메하나에 들어간다. 불가리아 전통 레스토랑 메하나(механа)는 널찍한 정원에 묵직한 나무 테이블을 차려 놓아 산들거리는 바람을 맞으며 식사를 할 수 있다. 붉은색과 어두운 녹색의 실로 도톰하게 짠 격자무늬 테이블보도 멋스러운데, 전통 의상에도 사용되는 바로 그 천이다. 어느 도시에 가든 메하나의 분위기는 대부분 비슷비슷하다. 정원 한편의 커다란 화덕에서 구워내는 큼직한 꼬치구이 샤슬릭(шашлык)은 아기 주먹만 한 돼지 목살과 삼겹살, 야들야들한 송아지 고깃덩어리를 꿰어 만드는데 이걸 다 어떻게 먹나 싶은 양이지만 육즙과 육질에 감탄하며 한입 한입 뜯다 보면 어느새 끝. 드롭 포 셀스키(дроб по селски)도 기막힌데, 성둥성둥 썬 돼지 간에 버섯과 양파, 마늘을 듬뿍 넣어 볶고 파프리카 가루와 파슬리, 딜 등의 허브로 맛을 낸 요리다. 특히 마늘, 파슬리, 딜은 불가리아의 많은 요리에 공통으로 들어가는(그것도 아주 듬뿍) 양념이다. 그래서 어떤 음식을 먹든 비슷한 풍미가 느껴진다. 우리나라 음식으로 치면 간장, 참기름, 고춧가루 같은 존재랄까? 든든한 식사를 마치고 메하나 밖으로 나오는데 광장 쪽이 시끌시끌하다. 콘서트가 열릴 모양이다. 얼른가서 자리를 잡고 앉아 축제를 다시 즐겨야겠다. 글 | 신예희사진 | 신예희 artravel vol. 7오직 여행의 영감을 위한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