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리틀스타할리우드, 미국, 양지훈 할리우드 HOLLYWOOD 세계 대중문화의 수도 할리우드 한복판. 한국은 물론 저 멀리 루마니아, 인도, 아이슬란드, 이란, 콜럼비아, 그리고 아프리카 대륙의 짐바브웨에 이르기까지 매년 수백 명에 달하는 전 세계의 뮤지션 꿈나무들이 몰려드는 곳. 천차만별 다양한 문화와 연령대의 학생들이 한 곳에 모여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연주하고, 음악을 만들며 무대를 표현하는 법을 배운다. 세계적 팝송 학교 Musicians Institute(이하 MI). 1977년 하워드 로버츠(Howard Roberts)라는 당대 최고의 재즈 기타리스트에 의해 기타 학원으로 설립된 것이 점차 인기와 규모가 더해져, 40여 년이 지난 지금 보컬, 기타, 키보드, 베이스, 드럼 학과부터 오디오 엔지니어링, 뮤직 비즈니스 학과 등 10여 개 전공과 2년제, 4년제 과정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최고의 대중음악전문학교로 자리 잡았다. 웬만한 교수들보다 더 많은 나이로 입학한 최고령 학생으로 주목(?) 받으며, 이 학교에서 보낸 2년의 시간. 배움의 즐거움도 컸지만, 무엇보다 값진 건 세계 도처에서 날아든 뮤지션들과 함께 나눈 소중한 우정이었다.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할리우드 한복판을 찾았고, 뜨거운 젊음을 음악으로 태우다 다시 흩어져 이제는 스스로 선택한 길 위에 각자의 삶을 살고 있는 나의 친구들. 이건 팝송을 누구보다 뜨겁게 품었던 작은 별들의 이야기다. Jonina G. Aradottir 요니나_아이슬란드 "방금 부른 이 노래, 사실은 화장실에 대한 노래야!" 순간 모두들 빵 터졌다. 웨스트 할리우드 한 아파트 파티에 모인 친구들. 거나하게 걸친 칵테일 몇 잔으로 얼큰해진 분위기 속에 모락모락 피어나는 모닥불 건너편에 요니나가 앉았다. 다리를 꼰 채 기타를 끌어안고 그녀가 뽑은 한 곡조는 그녀의 창작곡 'I Got to Go'. 경쾌한 기타 스트로크 위로 흘러나오는 감미로운 보이스에 연인을 만나러 달려가는 듯한 애절한 느낌의 가사까지 모든 것이 그렇게나 완벽한 노래였는데. '당신은 항상 내가 필요로 할 때마다 왜 그리 멀리 있나요. I got to go, I got to go, I got to go'. 윽! 이렇게 가사가 다르게 와 닿을 줄이야. 아이슬란드에서 온 싱어송라이터. 어쩜 딱 그 느낌일까 싶을 정도로 모든 것이 얼음처럼 투명하다. 맑은 목소리 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창법과 기타 연주, 심지어 새하얀 피부까지. 하지만 엘프 같은 모습 뒤에 숨어 있는 그녀의 성격은 짖궂기 그지없다. Hof라는 이름의 조그만 마을에서 나고 자란 장난기 많은 소녀에게 할 수 있는 놀이란 많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악기와 노래랑 친하게 된 것은 당연지사. 그녀에게 있어 음악은 평생을 함께 한 친구이자, 숨 쉬는 것만큼 자연스러운 일이다.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캘리포니아 로드트립 투어 공연을 한바탕 멋지게 둘러 다닌 녀석. 지금은 다시 자신의 섬나라로 돌아가 두 번째 녹음을 준비 중이다. 그녀에게 꿈을 묻자 주저함 없이 자기 음악으로 세계를 여행하며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란다. 그리고 언젠가는 반드시 자신의 음악을 들고 한국으로 찾아올 것이라고. 나는 문득 궁금했다. 요니나, 네 음악의 영감은 뭐야? 그리고 그녀의 대답은 다시 분명했다. "사람이지. 내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내 음악을 좋아해주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 www.joninamusic.com Björn Zetterström 뵨_스웨덴 "난 아바 사운드의 비밀을 다 알고 있지. 스웨덴으로 건너와. 함께 만들어 보자고! " 스웨덴이 낳은 전설적 보컬 그룹, 아바 ABBA. 그들의 눈부신 히트곡 같은 음악을 너와 함께 만들어낼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페이스북 메시지를 통해 대화를 주고받다 불쑥 나온 그의 대답(설마, 아바 멤버 중 한 명과 자신의 이름이 같다고 해서 이런 대답을 하는 건 아니겠지!). 이렇게 올여름 나의 스웨덴 로드트립 일정은 결정됐다. 5년 전 여름에도 그랬다. 이 친구를 비롯, 학교에서 눈 맞은 다른 친구 몇이랑 첫 번째 방학을 맞아 뭔가 그럴 듯한 여행을 떠나 보자고 즉흥적으로 계획한 로드트립. 그래 봤자 열흘 간 일정으로 LA-자이언캐년-그랜드캐년-피닉스-팜스프링스를 거쳐 다시 LA로 돌아오는 2천 킬로미터 정도의 여정이었지만, 그땐 반지원정대라도 된 것 마냥 비장했고, 길 위의 모든 것이 새로웠다. 남정네 4명이 좁은 렌터카를 타고 싸구려 모텔을 전전하며 조그만 기념품 하나도 살까 말까 고민하며 벌벌 떨었던 풋내기 자동차 여행. 그 전리품으로 지구 반대편에서 서로 메시지만 주고받아도 울컥 뭔가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오르는 진한 우정이 생겼다. 뵨은 13살 때 아버지가 선물해준 기타에 푹 빠지면서부터 음악의 길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할머니 집 지하실에다 스튜디오를 차려 만들고 노래를 직접 녹음 하기 시작한 베테랑 프로듀서. MI 졸업 후 스웨덴으로 돌아가 자신의 뮤직 퍼블리싱 회사를 설립하고, CSI, 뱀파이어 다이어리 등 미드 시리즈를 통해 자신이 만든 음악을 선보이기도 했다. 아바의 후예답게 그가 만드는 음악들은 정통 유로 팝 댄스 스타일에 기초하고 있다. 신기한 건, 그의 작품에는 내가 좋아라 하는 70년대 후반-80년대 초반에 걸친 유로 팝 느낌이 놀라우리만큼 진하다는 점인데, 이유를 물어보니 자신의 부친이 좋아했던 음악의 영향이라고. 아! 잠시 잊고 있었다. 이 친구가 내 조카 뻘이라는 걸. "나이를 넘어, 국경과 문화를 넘어 함께 음악 작업을 하는 것만큼 흥분되는 일은 없어!" 그래. 이 파란 눈을 가진 젊은 프로듀서는 그의 음악 친구들이 살고 있는 나라 수만큼이나 넓고 다채로운 음악을 펼쳐낼 게 분명하다. Anna Beatriz 애나_브라질 "음악이고 뭐고 모든 게 다 귀찮고. 그냥 이대로 죽어버릴까?" 학생들 중 드물게 피아노를 능숙하게 다룰 줄 안다는 점, 작곡한 발라드 곡의 정서가 서로 비슷하다는 점 등, 여러 공통점 덕에 만나자마자 금세 나와 절친이 되어버린 브라질에서 온 싱어송라이터 애나. 친해진 지 몇 주도 채 지나지 않은 어느 날, 미래를 약속하며 미국으로 함께 건너온 약혼자로부터 이별 통보를 받았다면서 학교 근처 커피숍에 앉아 펑펑 울기 시작했다. 청춘이 겪는 이별의 고통은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걸 아는 나는 그저 몇 시간 동안 그녀 곁을 지키다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풍성한 곱슬머리를 축 늘어뜨린 채 눈물을 흘리던 그녀의 모습은 역설적이게도 너무나 아름답게 내게 각인됐고, 그날 밤 나는 그녀를 떠올리며 상처받은 친구의 마음을 위로하는 내용의 듀엣 곡을 만들었다. 수개월 후 우리는 그 노래를 함께 불러 졸업 음반에 담았고, 이 노래는 영원한 우정의 징표로 남게 됐다. "내가 음악을 하기로 선택한 게 아냐, 음악이 날 선택한 거지." 영어도 편하지 않은, 가족도 없이 홀로 온 미국 땅에서 갑작스레 겪게 된 실연은 애나에게 깊은 단절감과 고통으로 다가왔지만, 그 후로 더욱 강해져 밤낮없이 그녀는 음악에만 몰두하게 됐다. 그 이듬해 자신의 상처와 배움을 담은 EP 앨범이 미국 시장에서 발매되었고, 앨범 타이틀 곡 'Beautiful Ride'는 LA에서 열린 Global Music Awards에서 최고 인기상을 수상했다. 나라는 존재의 의미는 이제 오직 음악이라고 말했던 친구. 이별 앞에 주저앉지 않아줘서 너무 고마워. 앞으로 너의 노래로 가득할 이 세상도 마찬가지 마음일 거야 www.annabeatrizmusic.com Yuka Suzuki 유카_일본 "나 아직 21세가 안돼서 술 못 마셔. 두 달만 더 기다리면 마음껏 마실 수 있지! " 송라이팅 클래스에서 짝을 이뤄 기말 과제 곡을 함께 만들며 친해진 유카. 몇 번 만나서 만들고 싶은 곡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앳된 얼굴과 사뭇 다르게 삶에 대해 진지하고 성숙한 가치관이 물씬 풍겨 나왔다. 보기보다 나이가 많은가 보다, 하긴 아시아 사람들은 대부분 말도 안돼는 동안이니, 아마도 한 30대 초반? 만나자마자 나이를 묻는 건 실례인지라 과제 제출이 끝나기까지 궁금증을 간직한 채, 기말고사가 끝나는 날 함께 뒤풀이 겸 식사하는 자리에서 와인을 시키려고 했더니 이 친구가 하는 말이다. 세상에, 도대체 너의 그 성숙함은 어디서 온 거란 말이냐. 타이완-일본 계 부모님을 둔 그녀는 외모는 일본인이지만 사실 미국에서 태어난 미국인이다. 신기한 건 영어 할 때엔 전혀 그렇지 않은데, 노래할 때엔 발성이 완전 일본 가수 스타일이 된다는 점. 아무래도 노래에는 유전자적인 무언가 작용하는 게 아닌가 싶다. 덕분에 졸업하자마자 바로 일본으로 건너가, 여성 3인조 보컬 그룹 '바이올렛' 활동을 시작했다. "노래를 만드는 게 너무 좋아. 언젠가는 꼭 유명한 가수에게 내 노래를 부르게 하고 말 거야." 하지만 그녀는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작곡 작업을 본격적으로 진행해 보기 위해 미국으로 다시 돌아왔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너는 배웠을까, 작은 성공을 뒤로 하고 꿈을 찾아 기꺼이 새로운 모험을 시작할 수 있는 용기. 어느덧 20대 중반의 나이가 되어 그녀의 노래는 더 깊고 성숙해졌다. 그때 그 용기가 틀림없이 그녀를 그녀의 꿈으로 데려다줄 것이다 www.yukasmusic.com Pon Siripon 폰_태국 스웨덴의 뵨과 함께 첫 방학을 맞아 떠난 로드트립에 동행했던 또 한 명의 여행 버디, 폰. 잘 생긴 외모 덕에 어딜 가나 여행길에서 만난 여자들의 시선이 예사롭지 않다. 애리조나 피닉스에서 들린 한 술집에서는 왠 낯선 여자가 다가와, 자신이 살고 있는 샌디에이고에 들리면 꼭 연락 달라는 이야기와 함께 전화번호를 적은 쪽지를 던지고 갈 정도. 하지만 태국에서 온 이 미남 청년은 이런 유혹들에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은 채, 라스베이거스에서 그랜드캐년에 이르기까지 가는 곳곳마다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태국말로 뭔가 열심히 설명하며 셀프 동영상을 찍기에 여념이 없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게 두 가지 있지. 방송과 하드락!" 곱상하게 생긴 외모로 왠지 수줍은 듯한 영어 말투를 구사하는 폰이지만 무대 위에 올라간 그의 모습은 완전 딴 판이다. 마치 동굴 저 너머에서 울려 나오는 듯한, 어떻게 소리를 내는지 도무지 알 도리가 없는 신비로운 그롤링 창법을 멋지게 구사하며 풀어헤친 머리로 헤드뱅잉을 헤대며 무대를 휘어잡는 것. 그는 본토 태국에서는 이미 상당한 팬을 보유하고 있는 하드락 그룹 'Plastic Surgery'의 리드보컬이다. 할리우드 음악학교의 졸업장을 가지고 태국에 돌아간 그는 본격 방송인으로 활동하며 더욱더 두터운 팬 층을 보유하게 되었고, 이에 힘 입어 자신이 리드하는 밴드의 두 번째 앨범을 준비 중에 있다고. 잊지 못할 자동차 로드트립을 통해 의형제를 맺다시피 한 친구이기에, 그의 근황이 가족의 좋은 소식 못지않게 기쁘다. 폰, 넌 언젠가 아시아의 별이 될 거야. www.instagram.com/ponsiripon Mimi Dahlén 미미롬_스웨덴 "고등학생 시절, 저 분이랑 같은 무대에서 공연한 적 있어. 무대 뒤에서 인사도 나눴지, 하하" 뭐라고? 세상에! 너 도대체 언제부터 음악 활동을 한 거야! 난 너무나 궁금해졌다. 약 25년 전 혜성처럼 등장해 'the Look', 'It must Have Been Love'과 같은 굵직한 히트곡들로 전 세계 팝 팬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던 스웨덴 혼성 팝 듀오, 'Roxette'. 그들의 할리우드 콘서트 소식에 신이 나서 함께 공연장을 찾은 내게 공연이 시작하자마자 무대 위로 등장한 여성 리드보컬을 가리키며 미미롬이 던진 첫마디가 이것이었다. 수업시간을 통해 워낙 출중한 보컬 스킬과 범상치 않은 무대 카리스마를 보여줬던 그녀인지라 왠지 엄청난 내공의 역사가 있을 거라 짐작하긴 했지만, 설마 월드스타인 Roxette 멤버와 함께 한 무대를 섰을 줄이야! 콘서트가 끝난 후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함께 핫도그를 먹으러 갔을 때, 3살 때부터 벌써 무대에 서기 시작했다며 그녀는 자신의 과거사를 풀어놓았다. 어린 시절부터 무대에 서는 것이 그렇게 좋았고, 그렇게 편안할 수 없었다며 자신이 원하는 것을 노래와 춤으로, 또 연기로 표현하는 순간만큼은 온전한 자신만의 세상에 있는 것 같다고 말하는 그녀는 내게 타고난 디바 그 자체였다. "사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은 백그라운드 싱어야." 세계 최고 가수들의 공연을 도우며 함께 세계 여행을 다니는 것. 주인공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는 화려한 스테이지 매너에 비해 그녀의 꿈은 의외로 소박했다. 그리고 그 꿈이 현실로 이뤄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 대화를 나눈 지 1년도 안돼, 투어 그룹 'Diesel'의 멤버로 발탁돼 세컨드 보컬리스트로 세계를 순회하기 시작한 것. 스스로 빛나면서도 다른 누군가를 빛내는 조명이 되는 뮤지션. 그녀의 음악은 지금도 거침없이 세계를 여행하고 있다. www.mimirom.com Oh It's a beautiful ride In the circle of life. Where I'm going there's no where to hide. Naked thoughts, I'm ready to share It takes time, I don't mind. As long as I get there 삶이란 아름다운 여행. 비록 내가 가는 곳 숨을 데 없지만 내 생각 고스란히 나눌 준비가 되어 있어. 시간이 걸리겠지만, 괜찮아. 언젠가 그곳에 도달할 수만 있다면 Anna Beatriz, 'Beautiful Ride' 글 | 양지훈 artravel vol.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