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의 환상, 섬과 그 주인들

중남미의 환상, 섬과 그 주인들남미의 섬들, 태원준 진정한 지상 낙원갈라파고스, 에콰도르 “아,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하네.”많은 여행자에게 로망, 갈라파고스에 입도하기까진 그 과정이 만만치 않았다. 에콰도르 정부에서 철저히 관리하는 섬이라 검역과 짐 검사에만 1시간 이상이 걸려 진이 빠졌는데 섬에 도착하니 총 110달러에 달하는 입도비까지 내라는 것이다. 50만 원에 육박하는 비행기 삯까지 떠올리니 기대로 잔뜩 부풀었던 마음에 휑하니 바람이 불었다.하지만 먹구름이 낀 마음을 애써 달래며 갈라파고스에 발을 내딛는 순간, 긴긴 악몽은 순식간에 달콤한 꿈으로 변했다. 그리 오래 걸릴 것도 없이 몇 발자국이면 충분했다. 갈라파고스 여행의 베이스캠프라 할 수 있는 산타크루즈 섬에서 해변으로 몇 발자국 이동하자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수백 마리의 물개가 말 그대로 지천으로 널려있었다. 이거 물개가 너무 많이 진을 치고 있어 해변에 발을 들여놓으려면 물개에게 입장료라도 내야 하나 싶었다. 게다가 녀석들은 뭐가 그리 귀찮은지 길을 막고 꼼짝도 않았다. 알아서 비켜가라는 듯 눈만 끔뻑이며 괴성을 질렀다. 물개를 지나치니 이번엔 길가에 널브러진 이구아나가 차례로 길을 막았다. 몇 마리 수준이 아니라 깡그리 잡아다 줄을 세우면 섬을 한 바퀴 두를 수도 있을 수준이다.어시장에서 생선 대가리를 훔쳐 먹는 펠리컨도, 펠리컨과 눈치 싸움을 벌이는 이름 모를 바닷새도 참 생경한 풍경이다. 동물원에서조차 보기 힘든 희귀 동물을 코앞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산타크루즈 섬과 이웃하고 있는 산타페 섬으로 넘어가 스노클링을 즐기니 황금 가오리와 물개가 함께 놀자며 뒤따라오고 총천연색의 열대어들이 뭐가 그리 신기한지 뻐끔거리며 내 주변을 빙글빙글 맴돌았다. 갈라파고스의 모든 동물이 똑같이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런 경험을 또 어디서 해볼 수 있을까? 사람은 동물을 해하지 않고, 동물도 그런 사실을 알기에 사람이 다가가도 경계하지 않는다. 내가 꿈꿨던, 동물과 인간이 하나 되어 어울려 사는 장면이 갈라파고스에선 가능하구나! ‘지상낙원’이라는 빤한 비유가 너무도 잘 어울리는 곳이었다. 이쯤 되니 그렇게 투덜거렸건만, 공항에서부터 이어졌던 철저한 방역과 비싼 입도비에 수긍이 갔다. 이런 풍경을 보존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에콰도르 정부의 특별 관리에 도리어 박수라도 쳐주고 싶었다. 갈라파고스에 머무는 내내 이 달콤한 꿈에서 언젠간 깨야 할 것이라는 사실에 가끔씩 한숨이 새어 나왔다. 비밀의 해변을 품은 섬마리에타 섬, 멕시코 멕시코 북부에 위치한 나야리트(Nayarit)주의 관광가이드는 분명 ‘폭파시험에 이용되던 섬’이라 했다. 뭔가 무시무시한 느낌이 들어 내키진 않았지만 아무도 모를 법한 비밀의 해변을 보여주겠다는 제안에 일단 보트에 올라탔다.폭탄을 온몸으로 받아내던 마리에타 섬까진 해변에서 채 15분이 걸리지 않았다. 견고한 바위 군락으로 이루어진 섬은 약 50년 전까지 폭파시험이 실시되던 곳으로 여전히 군사지역으로 지정되어 있단다. 지금은 중단되었다는 당연한 설명을 듣고서야 마음이 놓여 섬을 둘러보니 수천 마리의 새들이 섬을 뒤덮고 있었다. 사람의 접근이 오랫 동안 차단된 곳이라 주변의 바닷새가 모두 몰려들어 둥지를 틀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방금 전 파란 페인트 통에서 뛰쳐나온 듯 새파란 발을 가진 희귀조류, 파란 발 부비새까지 눈에 띄었다. 지금껏 내가 본 모든 새를 다 합쳐도 저만큼 될까 싶을 정도로 많아 넋을 빼고 있는데 가이드의 한 마디에 정신을 차린다. “자, 그럼 비밀의 해변 안으로 들어가 봐야죠. 장비 착용하세요!”“에이, 진짜 이 섬에 해변이 있다고요?” 여전히 믿기지 않았지만 일단 스노클링 장비를 차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거대한 바위섬 아래쪽, 마치 동굴처럼 뚫린 비밀의 입구를 통과해야지만 해변에 다다를 수 있기에 누구도 예외 없이 수영해야지만 해변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바위가 깎여나가며 생겨난 좁고 어두운 통로를 따라 사력을 다해 수영해 들어가니 불현듯 아담한 해변이 나타났다. 동굴을 탐험하다 바다를 만난 것 같은 거짓말 같은 순간이었다.바위섬 위에 떨어진 폭탄이 중간에 작은 구멍을 만들어냈고 그 안으로 바닷물이 스며들며 해변이 형성된 것이다. 당연히 섬 측면에서는 볼 수 없는 ‘숨겨진 해변’이었다. 신비로운 분위기가 감도는 해변은 독특한 형성 과정 그 자체로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비록 인간의 파괴적인 실험이 만들어낸 아이러니한 아름다움이지만 세상에 단 하나만 존재하는 특별한 섬이기에 쉽게 보트로 돌아갈 수 없었다. 동그랗게 뚫린 하늘을 바라보며 물놀이를 즐기고 있으면 그 위로 하얀 새들이 날아다녔다. 힘겹게 바위틈을 빠져나온 바닷물이 작은 공간을 에메랄드빛으로 물들였다.이렇게 지구에 숨겨진 비밀을 하나 더 알게 되었다. 많은 여행을 다녔음에도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숨겨진 비경이 끝없이 나타나는 걸 볼 때면 세상엔 우리가 그 존재 자체를 모르는, 얼마나 많은 비밀스런 풍경이 숨어 있을지 한없이 궁금해진다. 하늘과 맞닿은 호수태양의 섬, 볼리비아 면적이 무려 8,000㎢가 넘는 남미 최대의 호수인 티티카카는 심지어 해발 3,800m가 넘는 곳에 위치하고 있어 배가 오갈 수 있는 호수 중에선 세상에서 가장 높다. 불공평하게도 최고라는 수식어를 두 개나 가지고 있는 이기적인 호수다. 워낙 넓은 면적을 자랑하는 곳이라 페루와 볼리비아, 양국에 걸쳐 있는데 페루 국경을 넘어 볼리비아에 들어서자 ‘코파카바나’라는 작은 마을이 나타났다. 지역 특산물인 트루차(송어요리)를 먹으며 호수구경을 하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는 마을이라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호수 위에 있는 많은 섬 중 하나를 골라 놀러가 보기로 했다. 여행사 홍보 책자를 보다가 단번에 태양의 섬을 골랐다. 열정의 남미와 썩 잘 어울리는 이름의 섬이라 다른 섬을 알아볼 생각조차 없었다. 보트로 두 시간 가까이 달려 직접 마주한 태양의 섬은 섬이라기보다 호수 위에 떠 있는 거대한 언덕같은 느낌이었다. 알고 보니 실제로 트래킹 코스가 유명한 섬이었다. 섬에 내리자마자 섬의 전체적인 풍광을 눈에 담기 위해 4,065m 지점에 있는 전망대로 향했다. 산행이라면 자신 있었지만,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쳤다. 불공평한 출발이었다. 이미 출발 지점이 3,800m이니 한라산 두 배 높이에서 산행을 시작한 것이다. 감동이 차오르길 기대하며 전망대에 오르는데 숨이 먼저 차올랐다. 불과 265m를 오르는 것이지만 해발 0m에서 265m를 오르는 것과 해발 3,800m에서 265m를 오르는 건 천지 차이다. 열 걸음만 걸어도 100m 달리기를 한 것처럼 호흡이 가빠졌다. 태양 가까이 다가갈수록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결국, 정상을 수십 미터 앞두곤 거의 기다시피 하여 정상에 다다랐다. 분명 아름다운 풍경이 눈앞에 기다리고 있었을 테지만 극심한 호흡곤란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한참 동안 정신을 집중해 눈의 초점을 잡고 나니 그제야 전망이 눈앞에 펼쳐졌다. 호수의 색이 참 짙고 예뻤다. 호숫가에서 바라보던 호수와는 많이 달랐다. 티티카카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보기 위해선 약간의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호수라는 사실을 증명하듯 호수와 구름이 한 몸처럼 맞닿아있었고 그 너머로 보이는 설산은 마치 공중에 떠 있는 듯 묘한 풍경을만들어냈다. 섬 곳곳에 박힌 작은 집들도 미소를 자아내게 했다.그렇게 찬찬히 호수 풍경에 빠져드는 사이, 그제야 호흡이 겨우 정상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거친 산행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 있었지만, 그래도 당분간 산은 안 탈 것 같다. 펭귄을 만나다마르띠요 섬, 아르헨티나 ‘Fin Del Mundo'스페인어로 ‘세상의 끝’이라는 뜻이다. 남미의 최남단이자 지구 최남단에 위치한 마을, 우수아이아(Ushuaia)에 자랑스럽게 꽂혀 있는 팻말이다. 실제로 세계지도를 펼쳐놓고 지도상 가장 아래에 있는 도시를 손끝으로 가리키면 나오는 곳이 아르헨티나의 우수아이아이다. 세상의 끝이라 가는 과정조차 고난의 연속이니 모험심 가득한 여행자들만 몰려드는 곳이다.물론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박수받아야 마땅하지만, 이곳까지 온 여행자라면 자연스레 남극까지 마음에 품게된다. 그도 그럴 것이 우수아이아에서 남극까진 뱃길로 고작 1,000㎢ 가량 떨어져 있기 때문. 서울-부산 왕복 거리에 남극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남극으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선 최소 천만 원 이상의 막대한 출혈을 감수해야 한다. 베테랑 여행자에게 던져주면 최소 6개월은 여행할 수 있는 엄청난 금액이다.그래서 대다수 여행자는 마르띠요 섬으로 떠나는 차선책을 선택한다. 우수아아이에서 세 시간가량 떨어진 섬인데 펭귄 서식지라 남극에 가지 않고도 야생 펭귄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어쨌거나 단 세 시간 거리라도 더 남극에 다가가는 것이다. 나 역시 자금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마르띠요 섬으로 가는 페리를 잡아탔다. 비글 해협을 가르며 섬으로 향하는 내내 가마우지로 뒤덮인 섬과 바다사자들이 꿈틀거리는 섬이 이어졌지만, 펭귄이라는 특급 스타를 기다리고 있는지라 심드렁했다.한참 동안 망망대해를 가른 후 마르띠요 섬에 다다르자 펭귄 몇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신기하기도 했지만 얼마 안되는 숫자에 실망할 때쯤 페리가 섬 반대쪽으로 뱃머리를 돌렸다. 곧 저 멀리 수없이 많은 검은 점들이 나타났고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 점들이 펭귄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맙소사! 이방인에게 인사라도 하듯 수천 마리의 펭귄들이 작은 날개를 푸드덕거리며 뒤뚱거리고 있었다.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인지 아니면 야생 펭귄 같은 건 볼 일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인지 펭귄들이 인형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페리 안은 그야말로 열광의 도가니. 그 소리가 어찌나 큰지 펭귄들이 뒷걸음질을 칠 정도였다. 나도 꾸역꾸역 아껴왔던 감탄사를 쉴 새 없이 토해냈다. 아무리 봐도 믿기지 않는 장면이었다. 살면서 야생 펭귄을 볼 기회가 얼마나 될까? 마음이 잔잔한 감동으로 일렁이기 시작했다. 남극에 가지 못한 아쉬움은 펭귄의 귀여운 몸짓에 녹아 없어졌다. 세상의 끝에서 잊을 수 없는 선물을 받았다. 글 | 태원준사진 | 태원준 artravel vol.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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