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트럭여행에서 만난 스승들Africa 길 위에서 만나는 모든 이가 나의 스승이다. 여행하며 만나는 사람들은 뭔가를 하나씩 알려준다. 누군가를 만나면 '저 친구는 나에게 무엇을 가르쳐줄까?'란 생각이 먼저 떠오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된다. 그들을 통해 내가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먼지가 풀풀 날리는 아프리카 사막을 여행할 때도 그랬다. 트럭을 타고 20일간 아프리카를 누빌 때 만난 친구들은 길에서 만난 스승들이었다. 그들은 나에게 설교를 하지도 조언을 던지지도 않았다. 행동으로 눈빛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를 알려줬다. 20일간의 아프리카 트럭여행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출발해 나미비아, 보츠와나, 짐바브웨까지 4개국 4,850km를 20일간 누비는 대장정.손을 높이 들고 하이파이브를 나눴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던 어느 날.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세련된 도시 케이프타운에 있는 자그마한 사무실에 13명의 여행자가 모였다. 호주, 캐나다, 미국에서부터 독일, 스위스, 덴마크, 네덜란드까지 세계 곳곳에서 아프리카까지 날아왔다. 우리가 모인 이유는 트럭을 타고 아프리카를 함께 여행하기 위해서였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출발해 나미비아, 보츠와나, 짐바브웨까지 4개국 4,850km를 20일간 누비는 대장정이었다. 처음 본 우리는 약간의 긴장감 속에 어색한 인사와 간단한 미소를 나눴다. 이안과 리지 커플 외에는 모두가 혼자 여행을 하고 있었다. 연령대는 20대 청년부터 50대 아줌마까지 다양했다. 다들 착해 보이지만 어딘가 단단해 보이는 느낌이 들었다. 여기에 가이드인 토스카와 트럭 운전사인 자크, 독일어 통역을 담당하는 레니얼이 합세하니 3대가 모인 종갓집처럼 복작복작했다. 20일간의 대장정을 시작하는 날, 하필 케이프타운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이렇게 중요한 날, 왜 하필 비가 내리는 거야.'라며 속으로 날씨를 야속해 하고 있는데, 뉴질랜드에서 온 카리나는 "여행 떠나기 완벽한 날인데!"라며 활짝 미소까지 곁들였다. 하늘이 내려주신 비를 어찌하리, 카리나처럼 내가 생각을 바꿔야지. 생각을 바꾸고 유리창을 타고 흐르는 빗물을 보니 낭만적이라는 느낌이 들기까지 했다. 그러나 비 오는 날의 낭만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출발을 기념해 샴페인을 함께 부딪힌 지 몇 시간 지나지 않아, 트럭의 오른쪽 바퀴가 웅덩이에 빠져버렸다. 남아공의 유명한 와이너리인 시트러달을 지날 즈음이었다. 한 명도 빠짐없이 내려 힘껏 트럭을 밀었다. 그러나 트럭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불평이 터질 법도 한데, 다들 이 난관이 재미있다는 표정이었다. 흙탕물에 바지가 다 젖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몇 번의 기합 끝에, 무거운 트럭이 빠져나왔고 우리는 월드컵에서 승리를 거둔 사람처럼 손을 높이 들고 하이파이브를 나눴다. 오늘도 행복하니?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일상을 살면서도, 그날을 기억하며 스스로 물어본다.행복하니? 오늘은 괜찮았니? 아프리카 여행은 토스카의 "Good morning, happy campus!"로 시작해 "Are you still happy?"로 마무리했다. 토스카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가이드로 그녀의 아프리카 생태계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경험은 아프리카 국립공원을 다시 보게 만들었다. 토스카가 가이드를 하는 큰 이유 중 하나는 아프리카의 자연과 동물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이었다. 가이드로 일을 나올 때마다, 자신이 직접 만든 동물 노트와 식물 노트를 가지고 다녔다. 애정이 듬뿍 담긴 그녀의 일과 자연에 대한 자세는 마음속에 깊이 남았다. 매일 저녁 "아직도 행복하니?"라고 토스카가 물으면, 우리는 모두 소리를 지르듯 "예스"라 답했다. 이것은 마치 하나의 의식 같았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일상을 살면서도, 그날을 기억하며 스스로 물어본다. '행복하니? 오늘은 괜찮았니?' 하면서.트럭을 타고 아프리카의 척박한 땅을 질주하다 밤이 되면 텐트를 쳤다. 수풀을 화장실 삼고 수만 년 된 돌무더기를 침대 삼아 잠을 청했다. 어느 날은 달빛이 너무 밝아 잠을 이루지 못하기도 했다. '썬 블록'이 아닌 '문 블록'이 필요할 것 같은 밤이었다.아침에 눈을 뜨면 시리얼과 우유를 마시고 얼마 안 되는 물을 나누어 설거지를 했다. 동물들의 세상을 만나고 아프리카 원주민들과 눈길을 나눴다.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햇살을 온몸에 받으며 몸을 그을렸다. 태풍이 불어오는 날에는 텐트가 날아가지 않도록 붙잡느라 노심초사하기도 하고, 숨어있는 코끼리를 찾으러 작은 섬 한 바퀴를 돌기도 했다. 황홀한 일출과 일몰은 매일 봐도 경이로웠다. 세상이 매일 새롭게 태어나고 뜨겁게 사라지고 있었다. 친구들에게 엽서를 쓰는 페니 아줌마, 분위기 메이커인 카리나, 아름다운 커플 이안과 리지, 생전 처음 한국인을 만났다는 미국 처녀 로라와 스위스에서 온 산드라, 독일인다운 모범생 다니엘. 우리는 밤이 되면 모닥불을 피워놓고 옹기종기 모여앉아 그날 발견한 놀라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아프리카의 자연만큼이나 함께 여행했던 친구들의 세상을 대하는 다양한 시각을 만나게 된 것도 행운이었다. 각국에서 날아든문화사절단 생생하게 살아있는 우리와 다른 그들을,때로는 우리와 비슷한 그들의 모습을 만나게 됐다. 20일간 일어나서 잠자리에 들 때까지 100% 영어만 써야 하는 점도 특별한 경험이었다. 호주, 미국, 캐나다, 뉴질랜드까지 나라는 다르지만 모두 영어권 친구들이었다. 그리고 유럽에서 온 친구들은 기본적으로 영어를 구사하기 때문에, 함께 생활하다 보니 영어를 쓰는 것이 나도 모르게 자연스러워졌다. 이것이야말로 생생하게 살아있는 생활영어였다. 문장으로 완벽하게 구사하려고 하기보다는 일단 부딪혔다. 문법이 안 맞기도 하고 말도 안 되는 단어를 쓰기도 했지만, 먼지 속에서 만난 영어 선생님들은 훌륭했다. 잘못 말해도 대부분 전하고자 하는 의도대로 들었다. 이심전심. 역시 언어는 마음을 통하게 만들어 주는 도구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됐다. 여러 친구 중에서도 캐나다에서 온 이안은 빨간펜 선생님이 돼 주었다. 매일 저녁 짧게 영어로 일기를 쓰면 이안이 트럭에서 빨간펜으로 수정을 해줬다. 이전에도 이후에도 이렇게 흥미진진한 영어수업을 받아본 적은 없었다. 친구들은 각 나라의 문화사절단이었다. 산드라를 통해 스위스사람들이 독일어와 프랑스어, 로망쉬어, 이탈리아어까지 4개 국어를 한다는 것을 알게 됐고, 독일에서 온 다니엘을 통해 생생한 독일의 직업상에 대해 느끼게 됐다. 유럽과 미국, 호주, 캐나다 친구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함께 일어나서 밥 먹고 여행하고 잠들 때까지 하루하루 함께 생활하다 보니, 우리와 다른 그들을, 때로는 우리와 비슷한 그들의 모습을 만나게 됐다. 하루는 식사 시간에 스파게티가 아닌 밥이 나왔는데, 모두가 포크를 이용해서 밥을 먹고 있었다. 숟가락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이미 수프를 떠 먹느라 숟가락을 옆에 두고 있었는데도, 그들은 포크를 이용하고 있었다. 사소한 것부터 각종 사회문화적인 요소와 세계관까지 문화의 다양성을 만나게 되고 또 다른 발견을 통해 다른 이들을 이해하는 마음도 덩달아 커지게 됐다. 우린 함께 가야 해 매끈하던 모래언덕에 기다랗게 그려진 발자국 철로가 눈에 들어왔다.뭉클했다. 이곳에서도 누군가의 도움으로 걷고 있구나. 트럭투어는 척박한 사막을 달리는 여행이었지만, 힘들 때마다 꺼내볼 수 있는 추억을 만들어준 촉촉한 여행이었다. 나미비아에 있는 나미브 사막의 듄45에서였다. 나미브 사막은 나우클루프트(Naukluft) 국립공원 안에 있었는데, 그곳은 영화 '바그다드 카페'의 배경음악이 흘러나올 것처럼 적막함이 감도는 곳이었다. 그 사막 위에 아카시아 나무가 사막 언덕과 절묘한 콤비를 이루며 서 있었다. 듄45에서의 일출을 보기 위해 새벽 4시 추위에 떨면서 사막 위에 올랐다. 사막은 산이 아니었다. 단단한 흙 대신 모래가 기다리고 있었다. 발이 푹푹 빠지고 모래 속에 파묻힌 발은 나올 줄 몰랐다. 한 걸음 오를 때마다 지쳐갔다. 그때였다. 앞에 가던 산드라가 돌아보더니, 자신의 발자국을 따라오라는 것이었다. 그러면 흙이 다져져 있어 발이 덜 빠진다며. 뭉클했다. 이곳에서도 누군가의 도움으로 걷고 있구나. 나는 산드라에게, 내 뒤에 오는 레니얼은 나에게. 도대체 서로 의지하지 않고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땀을 훔치며 모래 위에 바람이 만들어 놓은 물결무늬를 바라봤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니 미끄러질 것처럼 매끈하던 모래언덕에 기다랗게 그려진 발자국 철로가 눈에 들어왔다. 인생 최고의 생일선물 아프리카에서 이렇게 멋진 생일선물을 받게 될 줄이야.사람들의 마음을 받고, 내 사랑을 전하며 여행하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지금까지 가장 기억에 남는 생일선물을 받은 것도 아프리카에서였다. 보츠와나의 오카방고 델타를 여행하고 있을 때였다. 오카방고 델타는 6,000제곱마일의 습지로 오카방고 강에서 발원된 물이 건조한 날씨와 칼라하리 사막 때문에 증발하고 수로만 남게 된 독특한 지역이다. 우리는 모코로라는 작은 배를 타고 아프리카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 부시맨 캠프에 도전했다. 전기도 물도 없었다. 당연히 화장실도 집도 없었다. 샤워는 꿈도 못 꾸고 양치도 짊어지고 들어간 생수로 해결해야 했다. 문명의 이기는 없었지만, 대신 아무것도 없는 이곳이 아니면 볼 수 없는 별 총총 박힌 밤하늘을 만날 수 있었다. 부시맨 캠프를 즐기고 있었는데, 하필이면 탈이 나 온종일 텐트를 지키고 있었다. 하필이면 생일이었다. 산드라는 마지막 남은 자신의 상비약을 내밀었다. "산드라, 너도 아프면 어떡해. 마지막 약인데 받을 수 없어."라고 했더니 "그건 그때 걱정하면 돼. 지금 네가 아프잖아."라는 것이었다. 어찌나 고맙던지. 텐트에서 햇살을 받으며 멍하니 누워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코끼리를 보러 간다던 친구들이 돌아왔다. 앞에서 코끼리 똥의 온도로 코끼리를 찾으러 다녔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리고 하나 둘 생일 축하한다며 풀로 만든 꽃다발을 내밀었다. 미안하고 고마웠다. 2박 3일의 부시맨 캠프를 마치고 문명 세계로 돌아가는 길. 다들 따뜻한 물에 샤워가 그립다고 이구동성이었다. 누군가 물었다. "누가 제일 먼저 샤워하지?" 어딘가에서 답이 날아들었다. "우리가 준비한 거 있잖아. 쿠키, 네 진짜 생일선물이야. 네가 먼저 샤워해." 축축한 땀과 장작불을 태운 연기와 온갖 동물들의 흔적들을 달고 있는 우리 둘에게 샤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절박한 것이었다. 아프리카에서 이렇게 멋진 생일선물을 받게 될 줄이야. 나는 친구들에 대한 고마움과 사랑을 어떻게라도 전하고 싶었다. 그래서 헤어지는 날 분주하게 마을을 뛰어다니며 사진을 인화하는 곳을 찾았다. 다행히 사진 현상소가 있었고 친구들을 찍은 사진을 인화해 뒷면에 편지를 썼다. 우리의 뜨거운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사진을 받아 들고 친구들은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사람들의 마음을 받고, 내 사랑을 전하며 여행하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다시 한 번 깨달았다. 글 | 채지형사진 | 채지형 artravel vol.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