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아티스트

VERY ARTISTIC INTERVIEWNew York, USA, America I decided, very early on, just to accept life unconditionally; I never expected it to do anything special for me, yet I seemed to accomplish far more than I had ever hoped. Most of the time it just happened to me without my ever seeking it. Audrey Hepburn 나는 매우 일찍 인생을 무조건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나는 인생이 나를 위해 특별한 것을 해줄 거라고는 결코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내가 희망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이룬 것 같았다. 대부분의 경우 그런 일은 내가 찾지 않아도 저절로 일어났다. 오드리 햅번 뉴욕 NEW YORK 모든 예술이 결핍에서 시작되었다는 말처럼, 인생의 부족함을 채우러 온 문화예술의 도시 뉴욕에서 100명 이상의 아티스트를 인터뷰하며 채워나간 나의 뉴욕 문화예술 다이어리. 뉴욕 맨해튼 5번가. 1950년-1970년 전 세계 모든 사람의 연인 오드리 햅번(Audrey Hepburn) 주연 <티파니에서 아침을(Breakfast at Tiffany's)>의 명장면이 떠오르는 곳. 노란색 택시가 새벽 무렵의 5번가 유명 보석상점 티파니 본점 앞에 멈추면, 깡마른 몸매에 실루엣이 다 드러나는 멋진 블랙 이브닝드레스, 얼굴을 반이나 가린 검은 안경 차림의 오드리 햅번이 내려선다. 올린 머리를 하고 우아한 몸짓으로 새벽거리를 리드미컬하게 걸어가다, 티파니의 쇼윈도 앞에서 크루아상과 커피로 간단한 아침 식사를 하는 그녀. 극 중 고급 콜걸인 햅번은 자신이 처한 현실을 모른 척하는 자기중심적인 여성이다. 그녀에게 티파니는 모든 여성의 마음 한 켠에 자리 잡은 허황되고 이중적인 꿈을 상징한다. 그녀를 떠올리며 나는 그녀처럼 'Moon River'를 흥얼대며 그곳을 걷고 있었다. 사실 오드리 햅번이 활동하기 전, 1950년대 미국은 글래머러스한 스타만을 추종했다. 깡마른 그녀는 그곳에서 전혀 빛을 발할 수가 없는 처지였다. 게다가 그녀가 영화배우로 데뷔할 당시 캐서린 햅번이란 배우가 이미 할리우드를 평정하고 있었다. 좁은 할리우드에서 '햅번'이라는 같은 이름을 쓰는 것은 좋지 않을 거라며 감독이 그녀에게 이름을 바꾸길 제안했을 때 그녀는 그녀의 이름을 고수했다고 한다. 딱 한 마디만을 남긴 채. "전 오드리 햅번이니까요." 참 당돌하면서도 매력적인 사람 오드리 햅번이 그토록 많은 이의 사랑을 받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했기 때문이다. 그간 사업을 한답시고 일은 많이 벌여놓고, 성에 차지 않아 혹은 완벽하지 않아 스스로 일부 자책하고 괴로워하던 내게 경종을 울리는 이야기였다. 결국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다른 사람으로부터 사랑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나는 나를 사랑하기 위해 뉴욕에 왔다. 물론 뉴욕의 다양한 문화예술을 만나는 것도 중요한 목표지만, 뉴욕에 발을 딛고 오드리 햅번의 공간에 선 순간 깨달았다.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 그간 부족했던 나 자신을 우선 용서하자고. 이제까지의 모든 실수, 실패를 용서하고 새롭게 노력해보자고. 나는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으니 스스로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인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내 존재가 스스로에게 편해졌을 때, 비로소 뉴욕의 문화와 다양한 아티스트를 편하게 만날 준비가 된 것이라 믿으면서. 에릭 Erik Maniscalco 제이 지(Jay Z)와 엘리샤 키스(Alicia Keys)가 부른 'Empire State Of Mind' 노래를 알아? 그곳에 이런 표현이 있지. 뉴욕은 꿈으로 이루어진 정글이라고. In New York, concrete jungle where dreams are made. 이런 꿈으로 만들어진 정글에서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는 것이 내 꿈인 것 같아. 그리고 내가 인물화를 주로 그리는 것은 정글을 구성하는 꿈, 그리고 그 꿈을 꾸는 사람들을 그리는 것이고. 이게 그냥 즐거워. 표현하기 힘들지만, 그냥 좋아서 하는 거. 그리고 좋아하는 것을 계속할 수 있는 것이 내 꿈이자 내가 만들어가는 예술이라고 표현하고 싶어. 비록 지금 살고 있는 환경이 초라한 화려함으로 가득한 작은 작업 공간이지만 이를 견딜 수 있고 늦은 나이에도 위험을 감수하며 예술을 하는 것은 그만큼 지금 하는 일이 즐겁기 때문이야. 작업할 수 있는 것 자체 로도 나는 행복해. 혼자였다면 더 힘들었겠지만, 이것 봐, 내 친구들이 있고 나처럼 자유롭게 꿈을 꾸는 사람들이 모여있기에 나는 즐거워. 이곳, 뉴욕. 꿈으로 이루어진 정글에서! www.erikmaniscalco.com 곽선경 Sun K. Kwak 글쎄요... 보이지 않은 세계에 대한 관심과 그것에 대한 자신만의 깨달음이나 자각, 내가 상상하는 세계를 실현하는 것. 다른 사람에겐 생소한 세계를 스스로 고민하고 이를 제시하는 것. 정답은 어디에도 없죠. 정답을 제시하려는 건 아니에요. 다만, 관객들이 생각해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를 제시하고 새로움을 선사해 또 다른 세계로 다가설 수 있게 상상의 범위를 넓힌다면, 그것이 아트(Art)가 아닐까요? 이것이 아티스트로서의 역할이라고도 생각하고요. 조나단 올링거 Jonathan Olinger 내 꿈? 음… 인간으로서 평등한 기회를 누렸으면 좋겠어. 특히 아이들. 아이들은 편견이 없어. 백인인지 흑인인지 구분하지 않아. 심지어 남자와 여자도 생각하지 않지. 그들은 사람을 정말 '인간' 그 자체로만 봐. 그런 순수한 아이들에게 정의로운 세상을 보여주고 싶어. 예전에 고흐의 친구가 고흐에게 삶의 신조가 무엇이냐고 물었다고 해. 그리고 이게 고흐의 대답. "침묵하고 싶지만 꼭 말을 해야 한다면 이런 걸세. 사랑하고 사랑받는것. 산다는 것. 곧 생명을 주고 새롭게 하고 회복하고 보존하는 것. 불꽃처럼 일하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선하게. 쓸모 있게 무언가에 도움이 되는 것. 예컨대 불을 피우거나, 아이에게 빵 한 조각과 버터를 주거나, 고통 받는 사람에게 물 한 잔을 건네는 것이라네." 빈센트 반 고흐 @jonathanolinger 톰 케인 Tommy Kane 그런데 언제 이렇게 유명해지신 거에요? 글쎄요. 한국에서 일하면서, 아시아를 돌아다니면서 제가 길에서 그린 그림들을 보고 사람들이 놀랐어요. 그림 속의 한글과 한문 등을 보면서 한국어 할 줄 아냐, 중국어 할 줄 아냐 물었죠. 그런데 제가 그걸 알 리가 없죠. 저는 그냥 문자가 아닌 그림으로 인식하고 따라 그린 건데 일러스트뿐 아니라 미묘한 캐치까지 그려낸 것이 그들에겐 재미있었나 봐요. 그러다 제 홈페이지에 그린 그림을 한국 사람 누군가가 발견해 여러 사이트에 올리기 시작했고, 사람들이 사이에 퍼져 나가면서 어느 순간 절 많이 찾기 시작했어요. 우와, 그 그림들 저도 봤는데, 그런 화풍은 언제부터 생겨난 거에요? 음... 서른다섯 살 때였나? 어느 날 갑자기 머릿속에 작은 생각이 떠올랐어요. 난 이제까지 그림을 그려 보려고 노력한 적도 없이 단지 내가 할 수 있을 것 같은 일만 하려고 노력하지는 않았나, 반성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당장 화방으로 달려가 작은 캔버스와 아크릴 물감, 붓 몇 자루를 사왔죠. 그리고는 쉬지 않고 고군분투하며 매일매일 그렸어요. 하루하루 발전할 수 있는 배움 가득한 습작이었죠. 만족할 때까지 계속 그려라. 행복해질 때까지 인생이라는 화폭에 너만의 이야기를 계속 만들어가라고. www.tommykane.com 앙투아네트Antoinette Wysocki-Sanchez 작업 중에 내 삶과 생각이 작품에 자연스럽게 반영되나 봐요. 살기 위해서 일을 하고 돈을 벌어야 했죠. 그건 통제를 의미하죠. 반면 머릿속 한편에는 언제나 작가가 되기를 꿈꿨기에 제겐 무한한 가능성과 기회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Control vs Chance. 이에 대한 저만의 이야기가 추상화 작품이 된 것이죠. 저는 워싱턴 DC 교외에서 자라 빈곤과 갱 조직이 두려웠어요. 하지만 그곳에서 나중에 교사로 활동하면서 깨달았죠. 아이들은 어디까지나 아이들이다. 그들은 두려운 것 없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표현해요. 그래서 해맑죠. 스트레스가 없어요. 표현하면서 치유가 되기 때문이라고 봐요. 누군가를 위해 눈치 보고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막 자유롭게 표현하거든요. 그때, 표현하는 것은 온전히 나로 살 수 있는 길이란 걸 깨달았죠. DC에서 또 다른 좋은 경험도 했어요. 교사로서 시간을 보내다가 크레이그리스트(Craigslist)라는 곳에 포스팅해서 DC지역 다양한 아티스트와의 만남을 주선하기도 했어요. 저처럼 힘들게 작업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죠. 그 때 ARTDC.org 라는 지역 예술공동체를 만드는 계기가 됐는데, 덕분에 예술가, 갤러리, 콜렉터를 긴밀하게 연결해 주는 네트워크 역할도 했어요. 여기서 만난 사람들 덕분에 많은 조언을 얻고 작가로서 성장할 수 있었거든요. 행복해지기 위해, 기회가 나를 찾아오게 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했어요. 사실, 나는 전문 작가가 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했었죠. 그런데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니까 기회가 찾아왔어요. 아니, 어쩌면 기회를 얻기 위해 제가 발품 팔고 고민하면서 찾아오게 만든 것은 아닐까요! 지금 작가라는 사실이 행복합니다. www.antoinettewysocki.com 윤보라 Bora Yoon 왜냐고요? 우리의 삶이 예술작품과 같은 창작품이라고 생각해요. 다양한 악기와 음색들이 모여 아름다운 음악을 창조하듯, 다양한 재료와 요소가 어우러져 멋진 건축물이 만들어지듯, 인간이라는 멋진 창작품이 함께 모여 팀을 이루면 놀라운 창조력을 발휘하죠. 소리에 귀 기울이듯이 상대방의 견해를 들으려고 해요. 물론 갈등이 생길 때도 있지만, 대부분 제 개인의 능력을 뛰어넘는 신비로운 일체감을 발휘하죠. 저는 이런 모습을 볼 때 행복해요. 일상이 행복으로 가득 찼다고 느껴지는 순간들이 너무 많아요. 매일이 기적이죠. 창의적인 기적! www.borayoon.com 글 | 손보미사진 | 손보미 artravel vol.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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