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상 : 回想여섯 개의 길, 여섯 가지 기억아트래블 편집부 길이란 누군가의 흔적이 이어진 것이라 한다. 결국 길을 걷는 일은 누군가의 발자국을 좇는 것이다. 누구의 발자국인지 알 수 없다. 다만 아무런 의미 없이 새겨진 발자국은 없으리라. 발자국 하나에 아픔의 기억. 또 하나에 환희의 기억. 모든 흔적에는 앞서간 인간들의 기억이 꾹꾹 눌려 담겨 있다. 그러니 길을 걷는 일은 누군가의 기억을 딛고 서서 자신의 기억을 새기는 일이겠다. 이를테면 또 다른 의미의 회상이다. 자신의 기억으로 타인의 흔적을 회상하는 것. 여기, 6개의 길이 있다. 어떤 길이 더 좋다 할 것도 없다. 어느 길 위에 당신의 기억을 남기고 돌아 올 것 인가. 그것은 오롯이 당신에게 달린 문제다. John Muir TrailCalifornia, USA 오직 나무의 행복을 위해 탄생한 길이 있다. 세계환경운동가의 아버지라 불리는 사람 존 뮤어(John Muir)에게 헌정된 길. 존 뮤어 트레일이다. 보통 세계 3대 트레일 중 하나로 손꼽힌다. 캘리포니아 서쪽 시에라 네바다 산맥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길. 가는 동안 수천 그루의 나무를 만나게 되는 곳이다. 이 길에 호텔이나, 식당 이런 것은 없다. 모두 걷는 이의 배낭 속에 챙겨 가야한다. 인간의 문명은 모두 작은 배낭 속에 구겨 넣고, 오롯이 자연과 조우하는 곳이다. 문명이라는 유리창 밖에서 만난 자연은 또 다른 세계를 선물한다. 시끄러운 도시에서는 들을 수 없는 나무가 기지개 켜는 소리, 풀이 하품하는 소리 같은 것들이 만들어낸 세계. 그 속에서 인간은 자연스레 깨닫는다. 나무도, 풀도, 모두 살아있는 생명이라는 사실을. 다만, 이 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진 않다. 굉장한 용기를 가진 사람이어야 하며, 운도 억세게 좋은 인간이어야 한다. 존 뮤어 트레일은 일년에 단 600명만 추첨을 통해 입산을 허가 한다. 역시 자연을 보존하기 위한 조치. 그 뿐만 아니다. 이 길 중간중간 야생 곰이 자주 출몰하는 지역들이 있다. 그래서 존 뮤어 트레일을 걷는 사람들은 곰 스프레이나 호루라기 등 곰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는 물품을 필수적으로 준비해간다. 만약 당신의 인생에 한번쯤 운이 좋아 존 뮤어 트레일에 들어갈 수 있게 된다면, 그 다음에는 용기와 각종 생존 물품을 챙겨갈 것. 상상력의 힘은 우리를 무한하게 만든다존 뮤어 DISTNACE 334km WEB-SITE johnmuirtrail.org SEASON 6–9월 DURATION 25–30일 DIFFICULTY ★★★★★ Camino de SantiagoFRANCE /SPAIN 신 앞에 스스로 더러운 인간이라 여기던 사람들의 고행 길. 카미노 데 산티아고. 예수의 제자라고 전해져 내려오는 야고보의 무덤이 있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Camino de Compostlla)로 향하는 길이다. 오래전 어느 날 들판에서 춤을 추는 별이 발견됐다고 한다. 별들이 춤추던 들판 주변을 파보니 야고보의 무덤이 나왔다고. 이 신화는 수많은 수행자에게 영감을 줬다. 오랜 기독교 전통에 신 앞에 사람이 너무 작고 더러운 존재이니, 고행을 통해 죄를 씻어내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높은 계단을 무릎만 이용해 오른다거나, 몇 일간 식음을 전폐하는 방식이었다. 약 800km의 거리를 두 발로 걷는 것도 그 중 하나였다. 수행자들은 입으로 이런 말을 중얼거리며 걸었다고 전해진다. "Kyrie eleison"(신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수행자들은 스스로를 끔찍이도 못난 존재로 인식했다. 그런데 여기, 이 길을 걸은 또 다른 순례자가 있다. 소설가 파울로 코엘료. 그의 순례는 조금 달랐다. 코엘료에게 순례길은 오직 신만을 향한 여정이 아니었다. 오롯이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 길 중간중간 사람을 만났고, 스스로를 성찰하기도했다. 그러면서 깨닫게 된다. 자신이 얼마나 소중하고 고귀한 존재인지를. 스스로에게 너그러워 지세요. 당신은 칭찬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으니 그 말을 받아들이십시오파울로 코엘료 「순례자」 중에서 DISTNACE 800km WEB-SITE santiago-compostela.net SEASON 4–10월 DURATION 25–30일 DIFFICULTY ★★★★☆ Milford Track Fiordland, NEW ZEALAND 뉴질랜드 사람들은 생각했다. 만약 지구에 신들의 정원이 있다면, 그곳은 바로 밀포드 트랙일 것이다. 밀포드 트랙은 뉴질랜드 남섬 남서쪽 피오르랜드 국립공원 우림을 가로지르는 길이다. 사실 이 길을 만든 이들은 뉴질랜드 원주민 마오리족이었다. 마오리족이 옥을 수집하고 운반하기 위해 다니던 길이 유럽의 탐험가 도널드 서들랜드와 존 맥케이에 의해 세상에 드러나게 된 것. 그래서경로 중 가장 유명한 두 개의 폭포 이름이 각각 맥케이 폭포와 서덜랜드 폭포가 됐다. 이렇게 아름다운 길이 세상에 알려졌으니 사람이 몰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다행히 뉴질랜드 정부는 철저한 구역보호정책을 세웠고, 지금까지 때묻지 않은 자연을 그대로 간직한 길로 남아있다. 비교적 짧은 거리의 경로지만, 자연의 세계를 걷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밀포드 트랙은 인간보다자연에 집중하며 만든 길이다. 자연을 헤치지 않는 한도 내에서 길을 냈다. 여기선 인간은 잠시 들렀다 가는 손님 그 이상이 되어선 안된다. 심지어 캠핑도 금지하고 있다. 대신 각 경로 별로 산장이 있다. 밀포드를 걷는 사람들은 무조건 산장에서 묵어야 한다. 또한 워낙 인기가 많은 길이고, 하루에 단 40명만 입장을 허가하는 까다로운 규칙이 있어 최소 6개월 전에는 예약하고 준비해야 한다. 모기와의 전쟁도 치뤄야 하고 시시각각 변하는 기후와도 싸워야 한다. 밀포드는 참 까다롭다. 그럼에도 이곳이 전세계인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하나. 순결한 자연환경 때문이다. 말 그대로 신들에게 정원이 있다면 밀포드가 아닐까 생각하게 되는 천혜의 풍광이 여기에 있다. 세계에서 가장 멋진 걸음밸런치 보한 DISTNACE 53.6km WEB-SITE www.doc.govt.nz/milfordtrack SEASON 10-4월 DURATION 4–5일 DIFFICULTY ★★★☆☆ Cotswold Way ENGLAND 아주 작고 별 것 아닌 것들이 주는 특유의 안정감 같은 게 있다. 건물은 하늘을 가리지 않을 만큼만 솟아 있고, 길은 자동차가 빨리 달리 수 없을 정도로 좁다. 사실 마을의 골목을 돌아다니는 것만큼 마음 편한 여행도 없을 것이다. 영국 남서부 작은 마을 100여 개의 부락이 모여있는 지역. 영국인들은 이 지역을 일컬어 코츠월드(Cotswold)라 부른다. 그리고 이 지역 마을을 가로질러 걷는 길이 바로 코츠월드 웨이. 정확한 경로는 바스(Bath)에서 시작해 치핑캠프던(Chipping Campden)에서 끝나는 164km의 길이다. 코츠월드 웨이를 걸을 때는 굳이 경로를 좇아 바쁘게 걸어갈 필요가 없다. 길을 좀 잃으면 어떤가. 그냥 마을이 주는 편안함에 몸을 맡기면 된다. 길을 걷다 목이 마르면 슈퍼를 찾아가 물 한통 사서 마시면 될 일이고, 쉬고 싶으면 마을 어귀 벤치에 앉아 쉬면 될 일이다. 좀더 고급스러운 휴식이 필요하면 카페에 들어가 밀크티 한 잔 시켜놓고, 세상 다 가진 듯한 표정으로 여유를 즐기는 것도 좋겠다. 무엇을 해도 좋고, 무엇을 하지 않아도 좋은 길- 코츠월드 웨이다. 한 낱의 모래알에서 세계를 그리고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보기 위하여, 너의 손바닥에 무한을 그리고 한 시간에 영원을 간직하라. 윌리엄 블레이크 DISTNACE 164km WEB-SITE www.cotswoldwalks.com/cotswold-way SEASON 4–10월 DURATION 7-12일 DIFFICULTY ★☆☆☆☆ Bruce Trail CANADA 아주 오랜 시간 만들어진 경사 위를 걷는 곳이 있다. 캐나다의 브루스 트레일. 나이아가라 북쪽에서 시작해 토버모리까지 이어지는 약 890km의 경사로에 놓인 길이다. 대부분 여행자는 차를 이용하며 주요 관광 지역만 구경한다. 그러나 이 길을 진짜로 느끼려면 역시 걷는 것이 최고다. 처음 이 길이 만들어진 것은 1960년이었다. 자연보호단체 소속이던 레이먼드 로위와 그의 친구 로버트베이트맨은 자연이 만들어낸 경사로 위를 걸으며 정글을 탐험하는 꿈을 꿨다. 그들은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브루스 트레일 위원회를 조직했다. 수많은 역경이 있었으나, 결국 1967년 트레일을 개장하기에 이른다. 재밌는 사실은 브루스 트레일은 천 여명 정도의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관리된다는 것이다. 9개의 자원 봉사 클럽회원들이 각 경로를 청소하고 관리한다. 말하자면 자원봉사자들이 만들어가는 트레일. 그래서인지 이 오래된 숲 길에서 쓰레기를 찾아보기 어렵다. 대신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만남을 이끌어내기 위한 봉사자들의 열정이 가득하다. 또 하나의 흥미로운 특징은 폭포를 굉장히 자주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나이아가라 폭포 경사로에서 시작한 것이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이런 광경을 처음 마주하는 사람들에겐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자연이 오랜 시간 빚어 낸 경사에 자원 봉사자들의 열정을 더해 만들어진 길이다. 나는 그들로 채워져 있기에. 하지만 나도 그들을 채운다. 월트 휘트먼 <열린 길의 노래>중에서 DISTNACE 890kmWEB-SITE brucetrail.orgSEASON 6–8월DURATION 40–50일DIFFICULTY ★★★☆☆ Simien TrekETHIOPIA 총으로 중무장한 경호원과 함께해야만 걸을 수 있는 길이 있다. 아프리카 에티오피아 시미엔 트렉이다. 시미엔 국립공원 안에 조성된 길로 144km 정도 되는 길. 총으로 중무장한 경호원이 필요한 이유는 걷다가 만나는 동물들 때문이다. 개코원숭이, 여우, 자칼 등 사람을 공격할 수 있는 야생동물들이 이 길 중간중간 삶을 차려놓고 있다. 완만한 언덕이 많아 걷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총 든 경호원이 자꾸 신경 쓰이는 곳이다. 1일 투어부터 10일 투어까지 다양하게 경로와 스케줄을 정할 수 있어, 시간과 돈이 조금 모자라는 여행자도 즐길 수 있다. 다만, 위험한 지역인 만큼 자유롭게 여기저기 돌아 다닐 수는 없고, 마음대로 시간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 조금 아쉽다. 아무렴 어떤가. 어린시절 「퀴즈탐험 신비의 세계」 진행자 손범수 아저씨의 목소리를 들으며 자란 많은 이들의 로망이 아닌가. 아프리카의 동물들을 직접 마주하는 일 말이다. 꿈을 향해 대담하게 나아가라. 자신이 상상한 바로 그 삶을 살아라.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DISTNACE 144kmWEB-SITE simientrek.comSEASON 12–3월DURATION 1–10일DIFFICULTY ★★☆☆☆ 오직 여행의 영감을 위한 책artravel magaz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