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두의 만물상케이채 사람에 이끌려 여행을 합니다. 세상의 아름다운 자연과 그 속의 풍광들이 저를 이끌지만 저를 가장 설레게 하고 움직이게 하는 것은 무엇보다 사람입니다. 유명한 관광지보다 사람들의 꾸밈없는 표정을 만날 수 있는 장소야말로 거리 사진가인 저에게는 더 매력적이며 또 갈구할 수 밖에 없는 곳입니다. 그리고 그런 장소는 세계 어디를 가도 있습니다. 또 하나 분명한 게 있습니다. 당신이 있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분명 시장이 있을 거라는 점이죠. 문화도, 언어도, 발전의 속도도 전혀 다른 나라들 모두가 시장을 통해 물건을 사고 팔고 또 삶을 영위합니다. 사람과 사람이 이보다 더 가까울 수 없을 만큼 다가서고 부딪치며 어우러지는 공간. 시장에서 저는 카메라를 들었습니다. 인레 호수의 5일장 미얀마 북동쪽에는 거대한 호수가 있습니다. 인레 호수라고 불리는 이 곳에는 독특한 방식으로 낚시를 하는 낚시꾼들이 있고, 호수 주변에는 다양한 소수민족이 살고 있어 관광객이 끊이질 않는 장소죠. 그런데 호수의 크기가 워낙 크고 소수민족들은 대부분 호수 쪽이 아닌 산 깊숙이 살고 있다 보니 짧은 시간에 그들과의 만남을 가진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다고 실망할 것은 없습니다. 인레 호수에는 매일 같이 장이 열리기 때문이죠. 이 마켓을 통해 다양한 현지 사람들의 모습을 한 곳에서 만나볼 수 있답니다. 그런데 유의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매일 시장이 서는 장소가 다르다는 사실! 일명 '파이브데이 마켓', 그러니까 5일장이라고 불리는 마켓은 다섯 곳의 장터에서 순서대로 번갈아 가며 열리는데요, 그날 어느 장소에서 장이 서는지 명확한 시스템이나 스케줄은 전혀 나와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인레 호수의 사람들은 모두가 알고 있지요. 내일 마켓이 어디에서 열리는지를 말이죠. 그러니 현지인들에게 물어보고 이른 아침 길다란 나무 보트에 몸을 싣고 길을 떠납시다. 아무리 멀어도 대부분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아 장터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그게 누구라도. 어떤 삶, 어떤 여행을 겪어왔더라도, 당신은 평화롭게만 보였던 거대한 호수의 적막과 달리 수많은 소수민족이 얽히고 설켜 만들어 내고 있는 소리와 움직임에 압도될 것입니다. 각 장터마다 장소의 매력이 있고 해당 장터에만 나오는 소수민족들이 있기에. 가능하다면 다양한 장터들을 모두 둘러보는 것이 좋습니다. 다른 건 안하고 장터들만 구경하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만큼 인레 호수의 5일장은 흥미진진하거든요. 이른 아침 일찍 출발해야 한다는 단점은 있지만, 너무 배가 고프다면 유명한 이 지역의 국수를 먹으면서 현지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해도 좋을 겁니다. 당신이 사고 싶은 물건을 찾기는 아마 어려울지 모릅니다. 대부분 현지인들끼리 생필품을 팔고 또 교환하는 장소니까요. 하지만 그게 또 시장의 매력이 아닐까 합니다. 구경만 해도 배가 부른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게 해주니까요! 도쿄의 츠키지 수산시장 현대적이고 발전된 대도시라고 해서 시장의 매력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첨단 도시에도 그곳만의 전통과 매력을 지닌 시장들은 곳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이웃 나라 일본의 수도, 도쿄를 예로 들어 볼 수가 있겠네요. 도쿄 또한 많은 유명한 시장을 가지고 있지만, 아마 가장 유명하고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장소는 역시 츠키지 수산 시장이 아닐까 합니다. 이 장소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고 해도 매년 이곳에서 열리는 대형 참치 경매 소식은 해외 토픽 등으로 한번쯤 본 적이 있을 거에요. 이곳에서의 참치 해체와 판매는 오래된 전통이지만, 너무나 유명해지고 관광객이 몰려들면서 이제는 매일 입장 순서를 정하고 입장 인원을 제한해야 할 만큼 유명한 이벤트가 되어 버렸죠. 저는 몇 번을 이 참치 해체 장면을 보려 했지만 번번히 실패했습니다.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새로운 장소로 이전된다는 소식을 듣고 이 유서 깊은 장소가 문을 닫기 전에 한번 들려야겠다고 찾아갔던 2년전 가을. 이른 새벽의 참치 해체를 보기 위해 새벽 4시에 도착했건만! 입장을 위해 따로 줄을 서는 장소가 있다는 것을 모르고 해체 현장으로 바로 찾아갔다가 시간을 낭비하고 입장 순위에도 들지 못해버렸다니까요.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츠키지 시장의 매력은 참치뿐만은 아니기에 바로 집으로 향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아침 해가 서서히 밝아올수록 활기를 띄기 시작하는 츠키지 수산 시장의 모습은 포기해야 했던 이른 아침의 잠을 보상해주고도 남음이 있었으니까요. 생선 냄새가 진동을 하고 바닥은 축축하지만 그게 또 수산시장만의 매력이잖아요? 사람들은 땀을 흘리며 생선을 나르고, 자르고 해체하고 또 판매를 합니다. 파는 사람, 사는 사람 모두가 즐거운 이른 아침 수산 시장의 풍경. 그것은 도쿄의 거대한 빌딩들만 바라보고 있으면 잘 느낄 수 없는 사람 사는 재미입니다. 도쿄의 숨겨진 인간미이기도 합니다. 새로운 곳으로 츠키지가 이동하더라도 이런 따스한 풍경 또한 함께 옮겨지기를 기원해봅니다. 마드리드 엘 라스트로 마드리드에서 새해를 맞이했던 언젠가의 겨울날이 떠오릅니다. 여행지에서 맞이하는 1월 1일 아침은 무척이나 썰렁하고 황량한 경우가 많죠. 그날도 그랬어요. 전날 밤 새해를 축하하며 파티로 거리를 물들인 사람들이 모두 사라져버리고, 텅 빈 거리와 함께 문을 닫은 가게들만 덩그러니 놓여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1월 2일이 찾아오자 분위기는 달라졌지요. 무엇보다 마드리드의 유명한 마켓, 엘 라스트로를 새해 처음으로 만날 수 있는 날이었으니까요. 엘 라스트로는 매주 일요일이면 열리는 마드리드 최대 규모의 프리마켓으로, 쁠라자 데 까스꼬로를 중심으로 노점상들의 행렬이 끝을 모를 만큼 길게 늘어지며 여행자들을 유혹합니다. 저의 눈을 사로 잡았던 것은 무엇보다도 오래된 물건들이었는데요, 잔뜩 나이를 먹은 우표나 서적들부터 각종 액세서리와 가구들은 그들만의 클래식한 매력을 온몸으로 뿜어내고 있었답니다. 게다가 저 늙은 카메라들! 이런 빈티지한 물건들이 가득한 마켓에서 사진가인 저는 역시나 카메라들에 가장 환호할 수 밖에 없었죠. 그런 제 모습처럼 모두가 자신들의 흥미를 돋우는 물건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시간을 들여 둘러보는 모습들이 참 따뜻했습니다. 이 모든 호기심이 모여 거대한 마켓은 이내 축제 분위기로 가득 차버리기 마련이죠. 골목 곳곳에는 축제 분위기를 더욱 뜨겁게 만들어주는 멋진 뮤지션들의 공연이 펼쳐집니다. 무엇을 사든 사지 않든 엘 라스트로 방문의 끝은 근처 타파스 바에서 맥주와 타파를 즐기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제 고작 점심때지만 아무렴 어떻습니까. 자, 얼큰하게 취합시다! 엘 라스트로에는 살짝 취기가 올라 설렁설렁 히죽히죽 즐기고만 싶은 그런 마법이 숨어있으니까요. 카쉬의 가축 시장 중국의 서쪽 끝 카쉬(Kashi)에도 매주 한 번씩 서는 장터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느낌이나 그곳에서 파는 물건은 마드리드의 그것과는 전혀 다르죠. 물론 많은 소수민족의 시장과 장이 매일같이 서는 도시이지만, 카쉬에서 가장 유명한 마켓은 역시나 매주 일요일에 열리는 가축 시장입니다. 이름 그대로 다양한 상인들이 소나 돼지 등의 가축을 사고 파는 장으로, 때로는 낙타같이 우리에겐 조금 낯선 동물들 또한 함께 거래됩니다. 이는 이 지방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원주민들인 위구르 사람들의 전통입니다. 티베트가 그랬듯 중국 정부는 이 지역을 중국스럽게(?!) 만들기 위해 한족들을 이주시키고 그들 특유의 못생긴 현대적 빌딩들을 지어놓았지만, 중심가를 조금만 벗어나보면 아직도 위구르의 사람들의 문화와 전통은 남아 있습니다. 독립을 주장하는 과격 시위가 종종 열릴 만큼 위구르 사람들의 자긍심은 강하게 유지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그들 삶의 모습 날 것 그대로를 만날 수 있는 곳이 바로 이 가축 시장인 거죠. 서로가 데리고 나온 동물을 유심히 관찰하고 튼실한 녀석으로 골라 거래를 성사시키는 농장주. 그들의 능수능란한 사업수완을 흥미롭게 지켜보다가, 밖으로 길을 나서니 많은 노점상들, 장날의 분위기에 취한 사람들이 저를 반갑니다. 이런 웃음이라니요! 이런 색깔과 이런 생생함이라니요! 쉽지 않은 현실에도 서로에 의지해 행복을 찾아가는 사람들. 카쉬의 시장에서는 그런 사람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저 경제적인 지표로 보자면 가난한 사람들일 수 있지만 그들의 마음만큼은 절대 가난하지 않았습니다. 라호르의 시장에서 제가 만난 것은 물건을 사고파는 상거래를 넘어서는 무엇이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오가는 마음의 온기였죠.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재미나고 신기한 시장과 가게들을 많이 다녀봤지만 실제로 무언가를 산 경우는 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오히려 많은 것을 받고 또 얻어오기만 했습니다. 세상을 여행하다 보면 때론 사람에 실망할 수도 있고 안 좋은 일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세상 어디라고 나쁜 사람이 없을까요. 하지만 시장에 올 때면 저는 다시금 사람을 믿게 됩니다. 사람을 좇게 됩니다. 사람이 가진 선의를, 사람을 향한 그 마음을. 저는 그것이 아직 이 세상이 아름다운 이유라고 믿습니다. 제가 가장 사진으로 담고 싶어하는 순간이기도 하죠. 제가 시장에서 사고자 한 것은 단지 그 사람들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돈 한푼 내지 않고 덤까지 잔뜩 받아와서 참으로 난감할 따름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그 눈부신 삶의 조각들을 담은 이 사진들로 비용을 대신하는 것뿐이겠죠? 많이 부족하지만 너그러이 이해해주시길 부탁합니다. 글│케이채사진│케이채 artravel magaz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