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그 치유의 힘

여행, 그 치유의 힘추크슈비체│독일│홍서윤 시대는 청춘들에게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고 이야기 한다. 그래서 고생스럽고, 힘겹고, 아픈 것을 청춘이라고 한다. 일부 청춘들은 시대가 원하는 고생을 해보려고 여행을 한다.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지역에서 새로운 문화를 경험하고 또 경험을 축적하고 스스로를 탐색하는 도전을 계획한다. 그런데 시대는 다시 그런 청춘들에게 여행은 사치라 말한다. 고생은 청춘의 대명사지만, 여행은 청춘을 나태하게 하는 독버섯 같은 사치라는 이야기다. 여행은 결코 사치가 아니다. 경험적 근거를 바탕으로 단언한다. 여행에는 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 없는 커다란 의미가 있다. 각자 살아온 인생에 따라, 각자 다른 눈으로 목격한 세상에 따라, 그리고 각자 온 몸으로 느꼈던 경험에 따라 각기 다른 의미로 발현된다. 같은 여행지라고 해도 당시의 기분에 따라, 내 삶의 형편에 따라, 또 누구와 함께했는가에 따라 새롭게 다가오는 것이 바로 여행이다. 여행의 희노애락. 온전히 나만이 느낄 수 있고, 나만이 이해할 수 있는 그 의미를 어떻게 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여기 새로운 길 유럽여행의 마지막 도시, 뮌헨(München)에 도착했다. 세계 최대 맥주 축제인 옥토버페스트(Oktoberfest)를 앞두고 도심 전체가 들썩인다. 여기저기 반바지에 무릎까지 오는 스타킹을 신은 바이에른주 전통의상 레더호젠(Lederhosen)을 입은 남자들이 눈에 띈다. 알록달록한 복장이 조금 유치해 보이긴 하지만 옥토버페스트를 즐기는 사람들에겐 그저 평범할 뿐이다. 앞으로 3주. 뮌헨에는 독일에서 가장 뜨거운 낮과 밤이 지속될 것이다. 축제의 열기에 휩싸이는 것도 여행자의 특권일 수 있지만 온종일 맥주 향과 흥이 오른 사람들의 고성방가를 듣자니 그것 또한 고역이다. 하루쯤은 축제의 열기를 피해 차분히 여유를 누릴 수 있는 여행지를 찾아 보기로 했다. 나만의 속도를 즐길 수 있는 그런 장소. 뮌헨에서 약 한 시간 반 거리에 추크슈피체(Zugspitze)가 있었다. 아침 일찍 기차역에서 추크슈피체로 출발. 이른 시각, 고요한 열차에 승객이라곤 나와 자전거를 끌고 온 금발의 여자가 전부다. 요란한 기계음을 내며 열차 문이 닫히더니 이내 빠른 속도로 열차가 달린다. 창밖에는 푸른 초원이 드넓게 펼쳐져 있고 이따금 보이는 꽃 장식 나무집 몇 채가 이곳이 독일임을 알려준다. 이 멋진 풍경을 혼자 즐기려니 조금 아쉬워 함께 탔던 금발 여자에게 말을 걸었다. 쉴 새 없이 이야기가 이어지는 동안 기차가 목적지에 도착한다. 그녀도 나와 같은 역에 하차했다. 자전거로 산악여행을 하는 그녀는 산을 넘어 오스트리아로 여행을 이어간다고 한다. 거창한 여행 계획에 비해 그녀의 복장은 너무나 단출해 갸우뚱 내 머리가 기울었다. 나도 그녀에게 조금 이상했을까, 그녀도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장기여행 중인 휠체어 탄 동양 여자의 모습에 놀란 건 피차일반이야!" 잠시 머쓱해서 훨체어 바퀴를 허투루 만진다 버스를 타고 도착한 추크슈피체의 마지막 관문인 케이블카역에 도착했다. 줄 하나에 의지해 해발 2,962m의 높은 꼭대기까지 도달한다. 산봉우리에는 여름의 뜨거운 태양을 비웃듯 녹지 않은 하얀색 눈이 소복이 덮여있다. 케이블카에 몸을 싣고, 점점 지면과 멀어지는 주변에 심장이 쫄깃해지는 짜릿함을 느꼈다. 누가 두 개의 바퀴 달린 휠체어로 산 정상에 오르리라 상상했을까. 이걸 내가 몸소 경험하고 있다는 것 그 자체로 짜릿했다. 하늘을 뚫을 듯 높이 뻗은 나무가 점점 성냥개비처럼 작아진다. 나를 이 곳까지 데려다 준 기차도, 버스도, 주변의 거대한 호수도 별 것 아닌 것이 된다. 자연 속에서 나는 너무 작은 존재였지만 자연 위에서 나는 마치 신이 된 기분이었다. 그동안 나는 저 산 아래에서 왜 그리 치열했을까. 왜 그렇게 스스로 채찍질하며 벅차게 살아냈을까. 스스로에게 묘한 연민의 감정이 몰려왔다. 그때, 뜬금없이 푸른색 무언가가 눈에 들어온다. 짙고 또 짙은 푸른색, 마치 어딘가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그런 푸른색의 호수, 아이브제(Eibsee). 반짝이는 에메랄드 빛 호수를 찾아 나섰다. 호수를 따라 이어지는 숲길엔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는다. 한발 짝 움직일 때마다 길바닥에 자갈 부서지는 소리와 나뭇잎 바스라지는 소리만 들린다. 멀리서 첨벙거리며 수영을 즐기는 아이들의 물소리가 울려 퍼지긴 했지만 귀에 잠시 스쳐갈 뿐 금세 주변이 고요해진다. 거니는 사람들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자박자박 발자국 소리만 낼 뿐 어떤 말도 하지 않은 채 호수의 아름다움을 음미한다. 호수 근처를 거닐다 벤치에 앉은 한 쌍의 커플을 발견했다. 굽은 등과 삶의 무게로 지친 어깨가 왠지 아련한 중년부부의 뒷모습이다. 잠시 멈춰 그들을 바라봤다. 세월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은 서로의 얼굴을 담담하게 마주보는 모습이 평온했다. 이 정적이고 부드러운 호수의 풍경들은 내게 몇 가지 질문들을 데리고 온다.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 여행을 하고 있었을까. 언제부터 이 길을 시작했고, 또 내게 여행은 그저 일상을 벗어나는 도피였을까, 아니면 방향조차 알 수 없는 암흑천지 인생에 반딧불일까. 수많은 질문들로 머릿속이 뒤엉킨다. 어느 하나 명쾌하게 답할 수 없는 것들. 하지만 분명한 것이 하나 있다. 자신을 한참 미워하고, 어느 날 찾아온 장애에 스스로를 족쇄 채우던 꼬마에게 여행은 마음을 치유하는 일종의 처방전이었다. 내게 여행은 그런 것이었다. 나쁜 아이의 시작 20년 전이다. 10살 꼬마가 방학을 맞아 처음 간 수영교실에서 사고를 당했다. 그리고 그 꼬마는 20년 동안 휠체어로 두 다리를 대신했다. 그때부터 꼬마에게는 '장애인'이라는 꼬리표가 항상 따라다녔다. 꼬마는 남들보다 더 빨리, 더 일찍 젊어서 고생을 했다. 누구도 원치 않았던 장애는 꼬마에게 부모를 고생시키는 '불효녀'라는 죄명을 붙여주었다. 부모의 아픈 손가락이 된 다음, 꼬마가 집 밖을 나설 때 마다 '안타까운'아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낙인이 매번 이마에 새겨졌다. 꼬마가 죗값을 치르기 위해선 부모의 아픈 손가락이 곯아 썩지 않게 '착한 자식'이 되어야 한다고, 시대는 꼬마에게 판결을 내렸다. 꼬마가 원했던 것도 아닌데. 그렇게 시대는 꼬마에게 속 썩이지 않는 '착한 자식'이란 족쇄를 채웠다. 꼬마가 현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다. 5년 후 어쩌면 10년 후, 유능한 의사가 나타나면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헛된 기대였다. 때로 꼬마는 왜 착한 자식으로 살아야 하는지, 왜 족쇄를 벗어나면 안 되는지 자신에게 주어진 불행에 세상을 원망하기도 했다. 착한 아이가 될 테니 장애란 족쇄를 풀어 달라 신께 기도하기도 했다. 발버둥 칠 때마다 인생은 올가미처럼 꼬마를 옥죄었다. 굴레를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달은 꼬마는 어둠에 사라지는 그림자처럼 사라져 버리고 싶단 생각에 눈물을 삼키기도 했다. 그렇게 20년. 꼬마는 고생스런 삶을 살았다. 비록 육체적 고생이 아닐지라도. 누구도 평가할 수 없는 그런 삶이었다. 20년이 지난 지금. 꼬마는 청춘이 되었고 결국 스스로 족쇄를 풀었다. 누구도 원치 않았던 장애. 그것은 꼬마의 잘못이 아니었다. 애초에 무죄였지만 그 사실을 20년이 지난 후에야 깨달았다. 이제는 착한 아이로 살지 않겠다며, 눈치 볼 이유도 없다며, 격려를 빙자해 가슴을 후비는 칼날 같은 말은 듣지 않겠다며 다짐했다. 그리고 또 하나 꼬마는 결심했다. 더 이상 착한 자식으로 살지 않겠노라. 부모의 아픈 손가락이 곯지 않게 쓰린 소독약을 발라서라도 자신의 인생을 사는 나쁜 자식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꼬마가 나쁜 자식으로 살겠다고 굳은 결심을 하게 된 가장 큰 계기가 바로 '여행'이었다. 집 밖을 나서기조차 두려웠던 꼬마가 처음 족쇄를 풀던 날. 그 날은 꼬마가 혼자서 KTX를 탔던 날이다. 차창 밖으로 아픈 손가락을 걱정하는 부모님의 눈을 보며, 애써 불안함을 숨기고 평온한 얼굴로 손을 흔들던 기억. 도무지 특별함이라곤 찾아 볼 수 없었던 그 첫 여행이 꼬마의 인생을 흔들어버렸다. 밀양에서 서울까지. 어떤 이에겐 평범했던 그 날 꼬마는 숨겨둔 보물 상자를 찾았다. 걸음마가 익숙해졌을 무렵 할머니와 함께 가락국수를 먹었던 기차역이 떠올랐고, 병아리 같은 복장으로 삼삼오오 모여 소풍을 가던 기차가 떠올랐다. 또 어느 겨울 눈꽃송이가 흩날리던 차창에 입김을 불어 작은 손으로 하트를 그리며 즐거워했던 기차여행도 떠올랐다. 기차가 달리는 동안 꼬마는 오래된 보물 상자 속 빛 바랜 추억을 꺼내보고 있었다. 그 잔잔한 추억은 결국 꼬마를 다시 살게 했다. 그때 그 꼬마는 이제 여행자가 되었다. 2015년 가을에는 혼자서 26인치 캐리어 가방을 끌고 유럽으로 훌쩍 떠났다. 휠체어를 탄 사람이 커다란 여행 가방과 함께 그것도 한 달씩이나 여행을 간다고 하니 다들 걱정스런 이야기를 쏟아냈다. 보물을 알아차린 꼬마는 더 이상 착한 아이가 아니었다. 아픈 손가락으로 살기 싫었다. 부모님의 염려 섞인 잔소리조차 피하고 싶어 혼자만의 여행을 출국 몇 일 전에야 통보했다. 아주 일방적으로 말이다. 누구도 꼬마의 여행을 만류할 수 없었다. 독일을 출발해 벨기에, 네덜란드, 덴마크, 스웨덴을 거쳐 다시 프랑스 파리로, 파리에서 다시 마지막 목적지인 독일 뮌헨으로 여행은 이어졌다. 6개 나라를 이어가는 한 달간의 여정은 마치 모험 같았다. 무거운 여행 가방 바퀴가 고장 나 난감했던 일, 말이 통하지 않아 답답해 서러웠던 일도 있었다. 인종차별 하는 버스 기사의 태도에 화도 났었고, 직원의 미숙한 일처리로 낯선 사람에게 침대를 빼앗겨 버려 한바탕 실랑이를 벌인 적도 있었다. 즐거운 여행이기만을 기대했지만 예상치 못했던 변수는 이어졌다. 샤워 중 화재경보기가 울려 대피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고, 휠체어 타이어가 펑크 나서 여행을 중도 포기해야 하는 절망적인 순간도 마주했었다. 꼬마의 여행은 좌충우돌, 우여곡절 그 자체였다. 꼬마는 말한다. 여행은 사치가 아니다. 여행이 고생스럽다고 할지라도 감히 인생과 비교할 수 있을까. 저마다 다른 시기에, 크기도 정도도 다른 고생을 사람들은 마주한다. 그리고 그 고생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해쳐나가는가는 저 마다 몫이다. 꼬마에게는 남들보다 좀 더 이른 시기에 좀 더 큰 고생이 찾아왔을 뿐이다. 그게 여행이 가르쳐준 것들. 그렇게 꼬마에게 여행은 치유의 시간이 되었다.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한다. 휠체어 타고 혼자 여행가면 불편하지 않아요? 불편하다. 불편하지 않다고 하면 그건 정말 거짓말이다. 그래서 어떤 때는 덜 불편한 여행만을 고집하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그냥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여행을 즐긴다. 마치 화장실도 없는 16시간짜리 야간열차를 타는 기분으로 말이다. 휠체어를 탄 여자가 그것도 혼자서 한 달 동안 유럽 여행을 했다고 하니 놀라는 사람들이 많다.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그러나 나는 이 여행을 통해 나를 가뒀던 수많은 오해, 편견을 넘는 중이다.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을 힘껏 넘고 있는 중이다. 글 │홍서윤사진 │홍서윤 artravel magazine

ARTRAVEL

LOG IN 로그인
  • HOME
    • MAGAZINE
      • STORY
        • SHOP
          • HOME
            • MAGAZINE
              • STORY
                • SHOP

                  ARTRAVEL

                  Search 검색
                  Log In 로그인
                  Cart 장바구니

                  ARTRAVEL

                  • HOME
                    • MAGAZINE
                      • STORY
                        • SHOP

                          ARTRAVEL

                          Search 검색
                          Log In 로그인
                          Cart 장바구니

                          ARTRAVEL

                          이용약관
                          개인정보처리방침
                          사업자정보확인

                          상호: 그루벌미디어 | 대표: 조익현 | 개인정보관리책임자: 조익현 | 전화: 070-8635-5561 | 이메일: cap@artravel.co.kr

                          주소: 서울시 강동구 천중로 39길 18, B03 | 사업자등록번호: 778-05-00734 | 통신판매: 제 2015-서울강동-1717 호 | 호스팅제공자: (주)식스샵

                          floating-button-im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