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잃어가는 것은 구메지마로 향하고 있다구메지마 | 일본 | 양주안 바다가 좋아 바닷사람이 된 김 아저씨는 수 백 번도 더 봤을 구메지마의 파도를 사진에 담고 있었다. 일주일에 두 번씩은 이 바다로 뛰어드는 김 아저씨는 20년째 오키나와에 살고 있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오늘의 파도가 어제와는 다르다며 연신 셔터를 누른다. 어쩌면 이게 정말 사랑이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한국에 돌아와 생각해보니, 김 아저씨의 사랑은 생각보다 더 깊고 절박한 것이었다. 섬은 달콤한 맛이 났다구메지마 くめじま 오키나와 나하 공항에서 국내선 비행기로 갈아타 30분정도를 더 비행한 뒤에야 구메지마에 닿을 수 있었다. 작은 경비행기에서 나는 기름 냄새와 프로펠러 돌아가는 소리는 위협적이기 보다는 호기심을 자극했다. 비행장을 빠져나와 택시를 이용해 숙소로 향했다. 시내로 향하는 도로는 무척이나 좁았다. 간간히 길 옆에서 자라는 사탕수수 나무의 잎이 차창을 스치는 소리가 나기도 했다. 택시에 동승한 김 아저씨는 구메지마 사람들 대부분이 사탕수수 농사로 생계를 이어간다고 설명했다. 설명을 듣고서야 구메지마에 도착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구메지마에 있는 동안 사탕수수 밭을 원없이 보게 됐다. 바다와 건물이 없는 곳은 모두 사탕수수 밭이 아닐까 하는 질문이 생길 정도였다. 생각해보니, 국내선 비행기에서부터 만나는 사람마다 조금만 친해지면 사탕을 내밀었다. 구메지마 사람들의 가방에는 사탕 한 봉지가 꼭 들어있는 듯했다. 사탕수수와 사탕을 원없이 보고 먹을 수 있는 동화에나 나올 법한 사탕 섬 이랄까. 이 섬 어딘가에 분명 사탕으로 만든 집도 있을 것이라는 상상도 해봤다. 구메지마의 첫 인상은 참 달콤했다. 넘어지 것이 두렵지 않았다하테노하마 はての はま 구메지마를 한마디로 표현하라면 '하테노하마'(はての浜)라고 할 것이다. 하테노하마는 구메지마 섬에서 약 5km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작은 해변 섬이다. 아무리 넘어져도 다치지 않을 것 같은 모래사장과 사방을 감싸고 들어와도 전혀 위협적이지 않은 파도가 치는 하테노하마. 구메지마 또한 그렇다. 골목에서 길을 잃어도 불안하지 않고, 낯선 이에게 위협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하테노하마와 구메지마는 바다 한 가운데 외롭게 떠있지만 각박하지 않다. 작은 실수는 웃어 넘길 수 있을 정도의 여유와 곤경에 처한 사람을 모른 척 하지 않을 정도의 관용이 아직 남아있는 곳. 구메지마를 돌아다니는 동안 실수하는 것이 두렵지 않았다. 술이 익으면 나도 곧 사랑에 빠질 것이다아와모리 あわもり 구메지마의 양조장을 다녀온 저녁이었다. 술을 만드는 곳을 보고 왔기 때문일 것이다. 유난히도 술이 마시고 싶어지는 밤이었다. 결국 숙소 근처 선술집에 들어갔다. 오키나와의 대표적인 술은 '아와모리'다. 그 중에서도 구메지마에서 생산 된 '구메생' 아와모리가 최고로 꼽힌다. 아와모리는 쌀로 만든 증류주로 우리나라의 소주 같은 것이다. 오래 전 오키나와가 류큐왕국이었을 때, 태국 등 동남아 국가들과 교류가 잦았다고 한다. 그래서 오키나와 아와모리에는 일본산 쌀이 아닌 태국산 쌀이 사용된다. 쌀로 만든 증류수에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검은 누룩을 띄워 숙성시켜 만든다. 구메지마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집안에 아기가 태어나면 동시에 술을 담갔다. 술은 항아리에 담겨 아기와 나이를 같이하며 숙성됐다. 이 술독이 처음 열리는 날은 아기가 성인이 되어 결혼하는 날이다. 그러니까 구메지마의 결혼식에서는 두 개의 술독이 개봉된다. 그리고 새로운 항아리에 신랑측 신부측의 아와모리를 반반 섞어 새로운 술독을 만들어 낸다. 구메지마에서 새 아와모리가 탄생한다는 것은 어느 두 사람의 사랑이 많은 사람 앞에서 인정받았음을 의미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아름다운 전통은 전쟁이라는 커다란 시련 앞에서 끝내 버티지 못했다. 1945년 벌어진 오키나와 전투 때 대부분의 주조장이 폐허가 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깨져버린 수 많은 항아리들이다. 새로운 사랑이 맺어질 때마다 탄생해 독특한 맛을 내던, 오래된 아와모리는 이제 더 이상 맛볼 수 없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전쟁이 끝난 뒤, 무너진 주조장 흙을 파서 건져낸 누룩을 복원시켜 아와모리라는 술을 다시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늦은 저녁 선술집에서 아와모리를 몇 잔 들이켰다. 그리고 이제부터 만들어지는 아와모리 항아리는 더 오래오래 숙성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구메지마 술독의 술이 더 익으면, 다시 돌아와 이곳에서 사랑을 해보고 싶다는 낭만적인 상상도 같이 하면서 점차 정신을 흐려갔다. 가장 느린 사람만 볼 수 있는 풍경이 있다구메지마 걷기대회 구메지마에서 열리는 걷기대회에 참가하게 됐다. 하루에 15km를 걷는다는, 듣기만해도 참가하고 싶지 않은 대회였다. 어쩌다 참가하게 됐지만, 마음이 없는 대회이다 보니 어물쩍거리며 게으름을 피웠다. 그 결과 모두 출발 하고 난 뒤 아무도 없는 출발선에서 홀로 걷기 시작하게 됐다. 구메지마 섬의 모양을 따라 한 10분쯤 걸었을 때 멀리 사람들이 보였다. 다가가보니, 김 아저씨와 대회 진행요원,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할머니가 나란히 걷고 있었다. 의도치 않았지만 그때부터 모든 속도는 걸음이 가장 느린 사람에게 맞추며 걷기 시작했다. 함께 걷던 사람 중 진행 요원 우에즈 히로꼬씨는 20년째 이 대회에 참가하고 있다고 했다. 60세를 훌쩍 넘겼지만 걷는 것만큼은 누구보다도 잘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20년간 우에즈씨가 이 대회에 참가하는 이유는 꼴찌가 되기 위해서였다. 우에즈씨는 이번 대회에도 어김없이 가장 느린 속도로 걷는 사람과 함께 걷고 있었다. 그 날 가장 느린 걸음의 주인공은 킨조 야수꼬씨였다. 올해 들어 관절염이 심해져 천천히 걸을 수 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킨조씨는 연신 자신의 속도가 느려 미안하다며 우리에게 사과했다. 물론 그럴 때마다 모두가 손을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때 우에즈씨가 웃으며 말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길을 어떻게 빨리 지나가죠? 빠르게 걸으면 볼 수 없는게 너무 많아요." 왜 였을까. 사과하는 킨조씨를 향해 웃으며 말하는 우에즈씨의 모습을 보면서 눈물이 왈칵 나오려 했다. 그때부터는 걷는 내내 울컥하는 마음을 다스리려 갖은 애를 썼다. 옆을 보니 김 아저씨도 나와 같은 고충을 겪고 있는 듯 했다. 별 것 아닌 말 한 마디와 미소의 온도는 유난히 바람이 많이 불던 그날의 언덕을 가장 따듯한 장소로 기억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가장 느리게 결승점에 도착했다. 걷기대회에 참가했던 사람들 모두가 자리를 뜨지 않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참가자들은 마치 처음 결승선을 통과하는 사람을 맞이하는 듯 힘찬 환영의 박수를 쳐주었다. 내 뒤에 누군가 없다는 불안감에 쫓겨 살아오던 지난 날들이 이 날 만큼은 부끄럽게 느껴졌다. 아직 이 세상에 가장 느린 사람도 받아주는 곳이 있다는 사실과 함께 걸어줄 따듯한 마음이 남아 있는 누군가가 아직 존재한다는 것. 구메지마 걷기대회는 그 희망을 볼 수 있는 곳이었다. 추워야 피어나는 꽃한비 寒非 구메지마의 벚꽃은 추위를 모른다는 의미에서 한비(寒非)라고 불린다. 다른 지역의 벚꽃과는 달리 구메지마의 벚꽃은 추운 곳에서부터 피어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가령 우리나라의 벚꽃이 따듯한 남쪽에서부터 만개해 올라온다면, 구메지마의 벚꽃은 추운 북쪽에서부터 만개해 내려온다. 생각해보면 얄궂은 운명이다. 추워야 피어나는 꽃에게는 따듯한 봄이 허락 되지 않으니 말이다. 차가운 바람만이 이 꽃이 아는 유일한 계절의 온도이다. 한비(寒非)와 구메지마 섬은 많이 닮아 있다. 본래 구메지마가 속한 오키나와 제도는 '류큐'라는 독립 왕국이었다. 그러나 군사적 요지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일본과 미국의 오키나와 제도 쟁탈전이 벌어졌다. 그러면서 오키나와 제도는 잠시 미국에 귀속 됐다가, 지금은 일본에 귀속되어 있다. 간도 대지진 이후 벌어진 조선인 학살 사건 때도 오키나와 제도의 사람들이 많이 희생 당했다. 당시 일본인들이 다른 억양을 가진 사람들은 모두 죽였는데, 오키나와 방언을 사용하는 사람들도 희생양이 된 것이다. 지금은 오키나와의 학교에서도 오키나와 방언으로 된 수업이 모두 사라졌다. 유일하게 방언을 이어가는 것이 바로 음악. 구메지마 사람들은 방언으로 된 가사를 만들어 노래로 부르면서 언어를 지켜가고 있다. 구메지마의 자연은 또 어떤가. 지구 온난화로 산호가 모두 죽어 흰색 가루로 변하는 백화현상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지구 온난화는 분명 지구인 모두의 잘못. 그러나 사라져 가는 산호를 가장 가까이서 보는 이들은 섬 사람들이다. 구메지마의 사람들에게 과연 따듯한 봄이 찾아 올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운명적으로 차가운 계절에 피어나야 하는 것이 구메지마일까. 깨져버린 술독과 잃어버린 언어와 백색 가루로 변해가는 산호까지 모두 바라봐야 하는, 그것은 결국 섬사람의 운명일까. 여행을 다녀온 뒤로 한참을 애틋하게 구메지마를 생각해야 했다. 그리고 이제는 필사적으로 기억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구메지마에는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시간과 속도와 인정과 관용과 환경까지 모두 아직 살아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야 김 아저씨가 연신 사진을 찍으며 했던 말이 가슴에 와 닿기 시작했다. "어제의 파도와 오늘의 파도는 또 다릅니다." 글│양주안사진│양주안 취재지원 오키나와관광컨벤션뷰로 JALJTA 하나투어 1577-1233 artravel magaz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