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ravel Collection_WATCH「보헤미안 랩소디」

Artravel Collection_WATCH「보헤미안 랩소디」 PROLOGUE 표류하는 인간을 위한 서사시 태어나면서부터 표류하는 운명을 타고난 사람들이 있다. 자의든 타의든 그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모든 인생을 걸곤 한다. 한국전쟁 이후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한국 아동의 해외입양이 활발하게 이뤄졌다. 당시 해외 입양된 한국 사람들은 정신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2016년 보건복지부 발표에 따르면, 2012년 8월까지 해외 입양된 165,305명 중 국적 취득 미확인자가 26,822명에 달했다. 한국 국적도, 그렇다고 다른 어느 나라의 국적도 가지지 않은 사람이 무려 2만 명이 넘는다는 말이다. 지난 2012년에는 미국 국적을 끝내 취득하지 못해 한국으로 강제추방 된 해외입양아 K씨가 자살하는 일도 있었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며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음악이나, 공연이 아닌 이민자, 난민, 입양아 등 표류하는 인간에 관한 이야기였다. 사실 영화 제목에서부터 표류하는 운명을 타고난 이들을 말하고 있다. '보헤미안'이란 단어는 오래전 체코 보헴 지역에 집시 민족이 많이 살고 있다고 해서, 떠돌이를 뜻하는 말로 사용된다. '랩소디'는 광시곡(狂詩曲)을 뜻한다. 한 인물이나, 민족, 신화 주인공 등의 이야기를 자유로운 형태로 연주하는 기악곡. 그러니 '보헤미안 랩소디'는 표류하는 모든 인간을 위한 환상곡이다. 영화는 밴드 퀸의 보컬인 프레디 머큐리에 집중하고 있다. 그의 서사에 집중하는 영화라면 제목은 단연 「보헤미안 랩소디」여야 했다. 단순히 이 노래가 퀸의 대표곡이기 때문이 아니다. 머큐리의 아버지는 인도에서 종교 문제로 추방당한 조로아스터교 신자였다. 머큐리는 인도인이지만 어린 시절을 탄자니아 잔지바르에서 보내야 했다. 청년기에는 탄자니아에서도 추방당하게 된다. 그의 아버지는 탄자니아를 식민지 삼은 영국의 공무원이었는데, 탄자니아가 해방되면서 자연스레 추방당한 것. 머큐리는 과연 인도인인가, 탄자니아인인가, 아니면 영국인인가. 영화의 첫 번째 대사는 머큐리를 대표하는 곡이 왜 <보헤미안 랩소디>여야 하는지 보여준다. "어이, 하나 놓쳤잖아, 파키!" "난 파키스탄인이 아니거든요!" SCENE 1 영국인은 아닌 영국의 슈퍼스타 <보헤미안 랩소디>는 누가 뭐래도 퀸의 대표곡이다. 1975년 발표한 앨범 「A Night at the Opera」에 수록된 곡. 이 앨범은 3개월 만에 100만 장 이상이 팔렸다. 퀸이라는 밴드가 본격적으로 세계적으로 많은 팬을 보유하는 계기가 됐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머큐리가 작사, 작곡을 맡은 곡이었다. 가사에 대해서는 많은 해석이 난무했다. 가사 첫 줄의 "MAMA, JUST KILLED A MAN"이 가정폭력을 당하던 소년이 아버지를 죽인 것이라는 해석과 머큐리가 이 가사를 통해 자신 안에 있는 남자를 죽였다, 즉 커밍아웃을 했다는 해석이 주를 이룬다. 이에 대해 머큐리는 한 인터뷰에서 해석은 해석자의 몫이라며 말을 아꼈다.프레디 머큐리 하면 항상 따라붙는 질문이 있다. 그의 성적 지향(Sexual Orientation)에 관한 이야기. 사실 머큐리의 성적 지향이 왜 이렇게 이슈가 되어야 하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우선, 성적 지향은 지극히 개인적인 부분이다. 게다가 머큐리가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었고,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것도 아니었다. 솔직히 추문은 비슷한 시기 활동하던 비틀즈의 전 멤버들이 뿌리고 다녔다. 그럼에도 비틀즈의 이미지는 언제나 미소년의 아름다운 영국 청년 밴드다. 반면 머큐리에게는 동성애자라는 타이틀이 항상 붙어 다녔으며, 기자들도 그의 성적 지향에 관해 집착에 가까운 질문을 던져댔다. 대체 영국 기자들은 왜 그렇게도 머큐리의 성적 지향에 관심을 쏟았을까. 퀸이 활발하게 활동하던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초반 영국은 심각한 경제 불황을 겪고 있었다. 1980년대에는 마거릿 대처가 집권하며 신자유주의 시대를 열기도 했다. 신자유주의란 국민 경제 활동에 정부 개입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경제 정책. 각종 규제가 풀린 기업들은 노동시장을 유연하게 했고, 낮은 임금으로 노동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중재자 없는 경쟁이 시작된 것이다. 그 결과 개인과 개인, 기업과 기업 간의 경쟁은 극단으로 치닫게 된다. 이런 사회적 환경은 사람들에게서 여유를 빼앗아 갔다. 자연스레 영국인들은 자신과 다른 존재에 대해 거부감을 갖기 시작했다. 특히 이민자들에 대한 반감이 심해졌다. 영국인들은 자신들의 자리를 이민자가 빼앗는다고 생각했다. 영국인들의 불편한 심기를 달래주기 위해 이민자 출신의 희생양이 필요했을지 모른다. 어쩌면 기자들이 집요하게 머큐리의 성적 지향을 파고든 것도 그 이유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민자 출신에다, 성소수자인 성공한 밴드 퀸의 메인 보컬. 최고의 자리에 올라선 이민자 프레디 머큐리를 어떤 방법으로든 깎아내리고 싶었을 테니까. SCENE 2예술이 경직된 시대를 푸는 방법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말하면서 라이브 에이드(LIVE AID)를 빼놓을 수 없다. 이 영화는 결국 라이브 에이드 공연 장면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프레디 머큐리의 개인적 서사에 관한 내용에는 각색이 많이 들어갔지만, 공연 장면만큼은 거의 완벽에 가깝게 재현했다. 사실 앞의 모든 서사를 빼고 라이브 에이드 공연 장면만 떼어놓고 본다고 해도 충분히 감동적이다. 배우의 연기와 무대 재현, 관객 음향까지 어느 하나 빠질 것 없이 당시 공연을 체험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심지어 한국에서는 이 영화 때문에 '싱어롱' 영화관이 생겼을 정도였다. 싱어롱 영화관에선 마음껏 노래를 따라 부를 수 있다. 퀸의 노래는 2018년 말 매우 추운 겨울을 마주하고 있던 한국인들의 마음을 잠시나마 풀어주었다.라이브 에이드는 1985년 열린 대규모 공연이다. 이 전까지만 해도 이렇게 많은 가수가 등장하는 공연은 없었다. 밴드 퀸이 연주한 영국의 웸블리 경기장뿐만 아니라, 미국의 존 F. 케네디 스타디움, 시드니, 모스크바 등에서 열린 프로젝트 공연이었다.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실시간 위성중계 공연이었는데, 전 세계 100여 개국에 위성생중계 됐고, 시청자가 무려 15억 명에 달했다. 이 엄청난 공연을 기획한 사람은 밥 겔로프와 밋지 유어였다. 두 사람은 모두 음악가였고, 동시에 사회운동가였다. 라이브 에이드의 기획 목적 역시 에티오피아의 기아 문제 해결을 위한 기금 모금이었다. 겔로프와 유어는 예술이 가진 힘을 믿었고, 전에 없던 공연을 탄생시켰다. 그것이 바로 라이브 에이드다. 사실 라이브 에이드가 열린 1985년 밴드 퀸은 약간 퇴물 취급을 받고 있었다. 1982년 해체설이 나돌았고, 1984년 <RADIO GAGA>로 재기에 성공했지만, 인기는 예전만 못했다. 라이브 에이드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퀸보단 엘튼 존이나, 비틀즈의 멤버 폴 매카트니의 무대가 더 많은 기대를 받았다. 엘튼 존은 당시 전성기를 구가하던 가수였다. 하지만 이게 무슨 일인가. 막상 공연이 시작되자 퀸은 무대를 장악해 버린다. 대중의 머릿속에서 잊혀지던 밴드 퀸은 완벽하게 부활했다. 공연 이후 엘튼 존이 인터뷰에서 "퀸이 쇼를 훔쳤다"고 말했을 정도. 경직된 영국 사회도 그의 무대 앞에서 두 손 두 발을 모두 들 수밖에 없었다. 웸블리에 모인 사람들은 어느새 머큐리의 지휘 아래 노래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성가대를 연상시켰다. EPILOPGUE수많은 머큐리를 위한 노래 프레디 머큐리는 끊임없이 자신의 태생적 정체성을 증명하며 살아야 했다. 조로아스터교에선 동성애를 금기시했다. 집 안에서는 아버지와 종교적 갈등이 있었고, 밖으로는 영국의 언론과 싸워야 했다. 그의 여러 가지 정체성 중 대중에게 환영받은 정체성은 단 하나였다. 밴드 퀸의 보컬 프레디 머큐리. 그는 수많은 무대에 올라 자신을 증명해야 했다. 다행히 그에겐 신이 내린 목소리와 음악적 재능이 있었다. 대중은 무대에 선 머큐리를 사랑했다.만약 머큐리에게 음악적 재능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독특한 종교 때문에 인도에서 추방당한 집안에서 태어난 영국 이민자. 성 소수자. 음악이 없는 프레디 머큐리의 인생을 상상해 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그런 상상을 해야 했다. 왜냐하면 세상에는 머큐리만큼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얼마 전 난민에 관한 이슈가 한국에서 떠올랐다. 난민 문제에 관해선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의견이 분분했다. 비단 한국의 문제만은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민족주의가 심해지고 있다. 세계 경제가 어렵고, 종교 갈등, 테러 등의 복합적인 문제가 많다. 이 논쟁이 한창인 사이 난민의 수는 늘어가고 있다. 시리아만 해도 800만 인구 중에 560만여 명이 난민이 됐다는 통계가 있다. 집을 잃은 사람들은 점점 다음 목적지조차 잃어버리고 있다. 운이 좋아 난민으로 다른 나라에 들어간다 해도 문제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난민들은 자신을 끊임없이 증명해야 한다. "자신이 안전한 사람"이라는 것을. 게다가 국제 구호 단체들은 여전히 후원금 마련을 위해 개인의 빈곤과 상처를 세상에 전시한다. 후원금 받으려면 이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고? 그건 모르겠다. 인간이 인간을 돕는 일이 무엇을 사고파는 경제 활동은 아니지 않은가. 그것은 더 뿌리 깊은 곳에서 나오는 양심과 인류애에 가까운 것이다. 돈을 받으려면 응당 불쌍한 자신의 모습을 전시해야 하는 시장경제 사고방식 그 너머에 있는 것이니까. 영화 그리고 노래 「보헤미안 랩소디」는 수많은 머큐리를 위한 광시곡이다. 입양아, 난민, 그리고 남들과 다른 정체성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모든 이들을 위한 영화이자, 평범한 머큐리들이 더는 자신을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 모두가 자신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사랑받는 날을 기대하는 노래다. 영화는 무대를 뒤로하고 내려가는 밴드 퀸의 모습을 보여주며 막을 내린다. 그러나 노래는 끝나지 않았다. 무대 아래에 있는 수많은 머큐리의 삶이 충분히 행복해져야 비로소 <보헤미안 랩소디>의 서사가 완성될 테니까. 글│아트래블편집부사진제공│20세기 폭스 코리아 artravel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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