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문 닫고 떠난 한 달 살기열여섯 명과 여덟 도시 그리고 여덟 가지 버킷리스트 아트래블 편집부 Prologue시대를 즐기는 미친 사람들 회사를 관두고 세계일주를 떠났다는 여행자의 이야기는 이제 물릴 만큼 많이 들을 수 있다. 그만큼 많은 사람이 여행을 떠나고, 콘텐츠를 제작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막상 일상의 지하철로 돌아오면 비범한 사람은 찾아보기 드물다.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는 평범한 직장인 대부분은 1년 평균 유급 휴가 사용 일수가 8일 정도 되는 사람들(근로기준법에 1년간 80% 이상 출근한 근로자에게 15일의 유급휴가를 주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지만, 대한민국 근로자의 1년 평균 유급 휴가 사용일은 8일이다). 학생이라고 뭐가 다를까. 아르바이트 포털 알바몬의 설문에 따르면 4년제 대학생의 29.9%가 학자금 대출 등 본인 명의의 부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각박한 사회에서 여행자가 등장하는 것 자체가 신기할 따름이다. 여행 콘텐츠 제작소이자 커뮤니티인 '여행에 미치다'를 처음 봤을 때의 충격을 잊지 못한다. 2014년 즈음이었다. 뉴스에선 한창 3포 세대, 4포 세대를 넘어, N포 세대라며 청년들을 한없이 측은하게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청년들은 저마다의 여행을 동영상과 사진으로 남겨 '여행에 미치다' 페이지에 공유했다. 뉴스로 본 청년들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끼로 시작해 흥으로 끝나는 콘텐츠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미소가 지어졌다. '여행에 미치다' 페이지에 공유된 콘텐츠들은 마치 이런 느낌이었다. "덤벼라 세상아 마음껏 즐겨 줄라니까!" 어쩌면 N포 세대니 하는 말도 너무 고루한 기준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시대는 변했다. 결혼, 연애, 출산. 이런 것들은 이제 필수가 아닌 선택이다. 이런 세대를 언론은 섣불리 무기력한 포기자로 만든 것은 아닐까. 적어도 '여행에 미치다'에 등장하는 청년들은 충분히 신나고 즐거워 보였다. 무려 세계를 놀이터 삼아 놀고 있었다. '여행에 미치다' 페이지가 성장하며 이젠 어엿한 여행 콘텐츠 제작회사가 됐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재미 삼아 하는 일과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은 분명 차이가 있다. 때는 바야흐로 중소기업과 자영업자가 한창 어려워지고 있다는 뉴스가 경제면을 독식하던 2018년이었다. 회사가 된 여행에 미치다는 또 다른 도전장을 냈다. 무려 전 직원이 해외로 한 달 살기를 떠나는 프로젝트. 이름하여 '한 달 살기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이다. 엄혹한 시대에 회사 운영진이 미치지 않고서야 이게 가능한 일인가. 아참. 우리가 잠시 까먹고 있었던 것이 있다. 이 회사에 모인 사람들은 여행에 미쳐있다는 사실 말이다. 그 모든 이야기가 마침내 한 권의 책에 담겼다. Page 1그들의 덕밍아웃 '덕후'란 말이 있다. 한 분야에 열중하는 사람을 일컫는 일본어 오타쿠(おたく)를 한국어 발음으로 변형한 단어다. 10년 전만 해도 덕후라는 단어는 상대방을 비하하는 용어로 사용됐다. 그 시절엔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는 것이 부끄러웠다. 하지만 최근 들어 '덕밍아웃'이란 단어가 등장하면서 용어 사용에 역전이 일어났다. 덕후는 자신의 취향이 또렷한 사람을 상징한다. 그만큼 개인의 취향을 존중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됐다는 말이다. 자연스레 사람들은 남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마음껏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고 있다. 책 「회사 문 닫고 떠난 한 달 살기」는 여행 덕후들의 이야기다. 여행을 좋아하다 못해 직업으로 삼아버린 사람들이 차린 회사가 '여행에 미치다'이니. 그들이 여행 덕후라는 사실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이미 여행에 미치다 크루에 합류하는 순간부터 덕밍아웃은 시작됐다. 그렇다고 그들의 구체적인 취향이 다 똑같냐고? 그건 또 아니다. 각 챕터마다 쓰여져 있는 멤버 개개인의 프로필을 읽어보면 또 저마다 다른 취향을 가지고 있다. 그냥 무작정 여행을 좋아하는 멤버부터, 빈티지 의류를 좋아하는 멤버, 반 고흐가 좋아 프랑스로 한 달 살기를 떠난 멤버까지. 심지어 같은 도시에서 한 달을 살아야 하는 사람들도 취향을 제각각이다. 책의 시작은 16개의 취향이다. 취향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책을 보고 있으면 부러운 감정이 든다. 어쨌거나 자신의 취향에 맞는 활동을 하고 책을 썼다는 의미니까. 그전에 자신의 취향을 당당히 드러내는 그 자체로도 용감한 일이다. 취향이라는 것도 결국 매우 사적인 영역이니 말이다. 유튜브나, SNS 등 각종 매체에서 자신을 스스로 드러내는 시대라고는 하지만, 아직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 어색한 건 사실이다. 16개의 프로필을 찬찬히 읽고 있으면 그런 생각이 문득 든다. 참 용감한 사람들이다. Page 2어쩔 수 없는 직업병 두 명의 친구를 본 적이 있다. 한 친구의 직업은 신문기자였는데, 휴대전화 메시지를 보내면 항상 맞춤법 오류를 지적했다. 또 다른 친구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만 5년째 하던 친구였다. 그는 편의점에 손님으로 가서도 진열대의 상품을 일렬로 맞추고 다녔다. 이런 현상을 두고 직업병이라고 부른다. 보통의 경우 직장 생활이 하루 일과의 절반 이상 차지하기 때문에 습관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다. 책 「회사 문 닫고 떠난 한 달 살기」는 직업병의 산물이다. 여행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들에게 한 달의 시간을 주면 책이 한 권 나온다. 우선 각 팀마다 명확한 주제를 가지고 한 달 살기를 했다. 콘텐츠 만드는 사람들의 직업병이라 할 수 있는데, 콘텐츠가 소비자에게 직관적으로 다가가야 하기 때문이다. 주제가 명확한 여행은 그만큼 쉽게 책을 읽어나갈 수 있도록 해준다. 게다가 여행 비용과 방문했던 식당, 가게, 공연 등에 대해 자세히도 정리해 놓았다. 챕터 말미에는 한 달 살기를 위해 더 준비하면 좋을 팁들도 모아 놨다. 이것이야말로 여행을 직업으로 삼은 이들의 직업병이 만들어낸 결과물이 아닌가. 책의 저자들은 자신들의 직업병에 대해 솔직하다. 여행이 직업이 되면서 생긴 새로운 고민과 고충도 슬쩍 얹어 놓았다. 독자 입장에서야 그들의 직업병이 고마울 따름이지만. 막연하게 여행이 좋아 시작한 이들은 오히려 고민되는 지점일 수 있다. 여행을 여행으로 즐기지 못하고, 어느 날엔가 여행이 일이 되어버리는 상상을 수없이 하고 있을 테다. 그런 고민들을 자신들의 책에 슬쩍 담아내는 걸 보면, 진짜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임에 틀림없다. 이 사람들 진짜 여행에 미쳤다. Epilopgue기꺼이 건네는 응원 어느 시인은 말하기를 미치지 않고서 사랑을 할 수 없다고 했다. 우리에게 익숙한 문학 작품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다 이상행동을 보이곤 한다. 셰익스피어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에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죽음을 택하는 극단적인 예시를 보여주었다. 안톤 체호프의 단편 「귀여운 여인」에선 주인공이 사회적 금기를 깨고 진정한 사랑을 찾아 떠난다. 그렇다. 무엇을 사랑하는 일은 결국 합리적인 이성의 틀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동반한다. 책 「회사 문 닫고 떠난 한 달 살기」의 에필로그를 읽으며 고전 문학들이 떠올랐다. 사랑은 개인적, 사회적 편견과 틀을 깨고 나오는 일이다. 에필로그에는 '여행에 미치다' 대표로서 한 달 살기를 기획하며 겪은 고민과 고충이 담겨있다. 수많은 위험성을 감수하고서라도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된 솔직한 이야기는 사랑에 대해 고찰하게 만들었다. 회사를 차려놓고 "돈을 바라보고 만들지 않았다"라니. 자본주의 시대, 자유경쟁 시대에 이익보다 가치를 추구하는 회사는 이상 속에나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에필로그를 읽고 난 뒤, 다시 한번 찬찬히 이 책을 살펴보길 권한다. 여행에 대한 여행에 미치다 멤버들의 애정이 곳곳에 묻어있다. 이내 즐거운 삶을 만들어가려 부단히 노력하는 이 사람들을 응원하고 싶어질 것이다. 시대의 한계는 결국 사랑하는 사람들, 그러니까 미친 사람들에 의해 극복되기 마련이니까. '돈'을 바라보고 만들지 않았고, 그저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에 의한 '여행에미치다'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우리가 '재미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회사 문 닫고 떠난 한 달 살기」 에필로그 중에서 글│아트래블 편집부사진│여행에 미치다 artravel magaz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