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ravel Collection_WATCH「셰이프 오브 워터 ; 사랑의 모양」

Artravel Collection_WATCH 「셰이프 오브 워터 ; 사랑의 모양」 프롤로그사랑의 가능성 교복을 줄여 입는 것이 유행이던 시절이었다. 학생들은 선생님에게 혼날 것을 알면서도, 바지통과 치마의 길이를 줄였다. 몇몇 수선집에선 학교 선생님에게 걸리지 않을 만큼의 교복을 줄이는 재단 기술을 가졌다며, 학생들을 유혹했다. 너도나도 교복을 줄여 입었다. 이 유행에 가장 피해를 본 이는 다름아닌 학부모였다. 청소년기는 하루가 다르게 몸집이 커지는 시기. 교복을 줄인 학생 대부분은 다음학기에 새 교복을 사 입어야 했다. 경제적 부담은 고스란히 부모의 몫이 됐다. 이 유행의 최후 승자는 학생도, 학교도 아닌, 교복 제작 회사였다. 교복 제작 회사가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했다. 학생은 자신의 몸이 가진 가능성을 몰랐다. 지난 2003년 4월 26일 서울 동대문구에서 18세 청소년의 자살 소식이 전해졌다. 그는 자신의 본명보다 육우당이란 필명으로 더 유명했다. 그의 본명은 고(故)윤현석이다. 당시 고등학생이던 윤현석은 시인이자, 연극 배우였으며, 퀴어 시민 운동가였다. 동성애 인권운동을 펼치며 받은 상처와, 수백 번 부딪혀 넘어진 사회적 한계는 18세 청소년을 자살로 이끌었다. 그의 유서 말미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있다. "참 내 일기와 시조와 노트와 시를 어머니가 본다고 바로 피지 못하게 해주세요. 당분간은 그저 평범한 아들이고 싶어요." 그는 왜 자신의 속사정을 죽어서도 어머니에게 털어놓기를 꺼려했을까. 이 자살의 근본적 원인은 하나였다. 당시 한국 사회는 '사랑'이 가진 가능성을 몰랐다. 기예르모 델 토르 감독의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 사랑의 모양」은 사랑의 가능성에 관한 영화다. 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두 주인공은 모두 '평범함'의 범주에서 빗겨난 인물들이다. 특히 우주 생명체의 비주얼은 쇼크 그 자체다. 기예르모 델 토르 감독은 「헬보이」, 「판의 미로」, 「블레이드 2」등을 통해 세계에서 가장 창의적인 괴물을 창조하는 감독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런 그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생명체가 바로 「셰이프 오브 워터 ; 사랑의 모양」의 주인공이다. 기괴한 비주얼의 사랑이야기. 얼마나 끔찍할까? 하지만,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의 이야기는 다르다. 수많은 관객은 말한다. 사랑을 이토록 아름답게 표현한 영화는 처음이라고. 사랑은 꼭 선남선녀가 꽁냥거리는 모습이 아니어도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다. 익숙한 것만이 아름다움은 아니다. 사랑은 그만큼의 가능성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 그걸 아직 우리가 모르고 있을 뿐이다. 가능성 하나언어의 가능성 언어의 사전적 정의는 '생각이나 느낌을 나타내거나 전달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음성, 문자, 몸짓 등의 수단 또는 그 사회관습적 체계'다. 타인에게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을 전달하는 일은 모두 언어다. 언어의 다양성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영화나 드라마다. 연기자가 "사랑해"라는 같은 동사를 말해도, 그의 표정과 눈빛, 서사의 맥락에 따라 시청자는 다른 해석을 할 수 있다. 그러니 언어는 자신을 표현하고자 하는 이의 생각, 감정, 삶의 맥락을 모두 아우르는 전인격적 행위다. 만약 언어를 단순히 문자나, 문법 체계로만 한정 짓는다면, 문자가 없던 시기에 공동체를 이루며 살았던 인간의 조상을 모두 부정해야 한다. 인간의 언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많은 가능성을 품고 있다. 「셰이프 오브 워터 ; 사랑의 모양」에서 두 주인공은 모두 음성 언어를 사용하지 못한다. 우주 생명체는 인간과 언어체계가 완전히 다르며, 여주인공은 언어장애를 가지고 있다. 이 사랑의 서사에서 '사랑'이란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눈빛과 표정, 행동으로 두 주인공은 자신의 감정을 전달한다. 놀라운 일은, 그들의 행위만으로 관객은 충분히 두 존재가 사랑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사랑이라는 단어 안에 진짜 '사랑'을 가두어 놓은 것일지 모른다. 아니면, 무수한 감정과 생각의 서사를 '사랑'이란 단어 하나로 섣불리 상정해 버리는데 익숙해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진짜 사랑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사랑은 아주 천천히 상대방에 대한 감정과 생각이 변하는 모든 과정이며, 그것을 표현하는 모든 행위다. 그러니 사랑은 문자적 언어체계에 가둘 수 없다. 영화의 두 주인공은 그 사실을 온 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가능성 둘시대의 가능성 "죽은 뒤엔 거리낌 없이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겠죠. '○○○은 동성애자다'라고요... 형, 누나들의 수고가 다음 세대 동성애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잊지 말아주세요." 윤현석의 유서 중 일부분이다. 그는 시대적 한계에 의해 죽은 사람이다. 지금은 성소수자 인권운동이 조금씩 수면으로 떠오르고 있고, 미약하게나마 공감을 얻고 있다. 하지만, 윤현석이 별이 된 2003년 한국사회는 그렇지 않았다. 윤현석은 동성애인권운동을 펼치는 동안, 수많은 인신공격에 시달렸다. 18세 청소년이 감당하기엔 버거운 문장들을 온 몸에 새기며 싸워야 했다. 윤현석은 시대적 한계 앞에 좌절했지만 역설적이게도 그의 죽음은 새로운 시대의 문을 열었다. 실제로 현재 정의당, 녹색당 등이 윤현석의 영향을 받아 성소수자 정책을 펴고 있다. 한편 윤현석의 곁에는 함께 운동을 펼치며 온 몸으로 시대적 한계를 뚫어 나가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의 말을 빌리면, 수고하는 형, 누나들. 아직 미미하지만, 그래도 2018년 시대는 여기까지 와있다. 서울 시청 앞에서 퀴어퍼레이드가 펼쳐지며, 드라마에도 종종 동성커플이 등장한다. 윤현석과 그와 함께한 사람들. 그 작은 가능성들 덕분에. 「셰이프 오브 워터 ; 사랑의 모양」는 시대적 한계를 명확하게 그어놓고 시작한다. 영화의 배경은 1960년대 미국. 영화 등장인물 중 배우 마이클 섀넌이 연기한 실험실 보안관인 스트릭랜드는 당시 시대상황을 가장 명료하게 상징한다. 군인 출신인 스트릭랜드는 상관에게는 충성을 다하는 사람이며, 여성을 성적대상화하는 농담을 스스럼 없이 던진다. 아내와는 강제적이고 고압적인 성관계를 즐기며, 자신과 다르게 생긴 존재는 무조건적으로 혐오한다. 그의 일방적 혐오는 스트릭랜드가 우주 생명체를 처음 보자마자 한 행위에서 드러난다. 그는 우주 생명체와 첫 만남에서 혐오스러운 표정과 몸짓을 숨기지 않는다. 사실 1960년대는 미국에서 여성과 흑인 인권운동이 격해지는 시기였다. 시대는 차별과 혐오에 다른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었지만, 당시 미국의 정권과 사회는 여전히 혐오에 익숙했다. 스트릭랜드가 그런 시대를 모두 반영한 인물이라면, 두 명의 주인공은 시대의 가능성을 상징한다. 영화는 말한다. 그 모든 혐오와 차별을 넘어서는 힘, 그것이 바로 사랑이라고. 시대는 결국 사랑의 무한한 가능성을 포착한 이들에 의해 여기까지 와있다고 말이다. 에필로그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모든 인간에게 사랑은 고유한 것이다. 사랑은 주체가 누구인가에 따라 다른 모양으로 나타난다. 그러니 고유하다. 세상에는 무수한 사랑의 모양이 존재한다. 게이, 레즈비언, 바이섹슈얼, 폴리아모리 등. 「셰이프 오브 워터 ; 사랑의 모양」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랑의 모양을 응원하는 영화다. 자신이 가진 사랑의 모양이 남들과 다르고, '평범함'이란 기준에서 먼 것이어도 충분히 아름답다고. 오히려 남들과 다른 사랑의 모양이 시대의 가능성이 된다고 말한다. 윤현석은 자신의 고유함을 지키고, 타인의 사랑을 보호하기 위해 죽었다. 여전히 사랑의 가능성을 지켜내기 위해 세상의 기준선 밖에서 싸우는 이들이 있다. 정형화된 문자와 문화로 설명할 수 없는 수억 가지의 사랑의 서사가 같은 지구 위에서 진행 중이다. 체계는 인간과 인간의 의사소통을 빠르게 할 수 있도록 만들었지만, 반대로 한 단어를 내뱉기 위해 온갖 감정과 생각이 변해오는 느린 과정을 참지 못하게 했다. 체계 밖의 세상은 무조건적으로 두려운 것이 됐다. 하다못해, 언어 체계가 다른 외국 여행만 가도 사람들은 두려워한다. 영어를 못해서 두렵고, 스페인어를 알아들을 수 없어 두렵다. 하지만, 언어가 통하지 않아 해외여행 중에 죽었다는 사람은 아직 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두렵다. 막연한 두려움은 무조건적인 혐오에 좋은 자양분이다. 나와 다른 모양의 사랑. 나와 다른 민족의 사람. 이미지가 좋지 않은 종교의 신도. 세상 모든 삶의 모양을 인정하는 것보다, 나의 세계에서 그 생경한 모양의 삶을 모두 배제하는 일이 쉽다. 게다가 몇몇 단체나 권력자들은 혐오를 부추기기도 한다. 혐오가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는 단체나 권력기관이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1960년대 배경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 사랑의 모양」를 보며, 현 시대를 목격했다. 여전히 세상에 두려움과 혐오를 조장하는 집단이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가 모두 끝난 뒤 노래 하나가 떠올랐다. 「셰이프 오브 워터 ; 사랑의 모양」의 스트릭랜드와 이 시대의 혐오를 조장하는 이들에게 바치고 싶은 노래. 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의 마지막 앨범에 수록된 곡 <그건 니 생각이고>. 내가 너로 살아봤냐? 아니잖아니가 나로 살아봤냐? 아니잖아걔네가 너로 살아봤냐? 아니잖아아니면 니가 걔네로 살아봤냐? 아니잖아...친절히 설명을 조곤 조곤 조곤 조곤 조곤 조곤 해도못 알아들으면 이렇게 말해버려그건 니 생각이고「그건 니 생각이고」 중에서 글│아트래블편집부사진제공│㈜이십세기폭스코리아 · 올댓시네마 artravel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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