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ravel Collection WATCH PROLOGUE 질량보존의 법칙 어떤 물질에 자극을 주면 물질의 모양이나 성질이 바뀌지만 소멸되거나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물을 가열하면 모두 수증기로 날아가 버리지만 그렇다고 물이 완전히 사라져버리는 것은 아니다. 가열해 날아간 물은 수증기가 되어 지구상에 계속 존재한다. 질량보존의 법칙이다. 인간은 삶 속에서 다양한 형태로 고통을 마주하게 된다. 한 명의 사람이 겪는 고통의 량을 측정할 수는 없지만 확실한 것은 어떤 형태의 고통이든, 당사자에겐 세상에서 가장 무겁고 아픈 것이라는 사실이다. 고통은 한 순간의 사건이다. 그 후 오랫동안 지속되는 것은 고통이 남기고 간 통증. 한번 느낀 고통은 사라진다기 보단 통증으로 성질만 변한다. 장 마크 발레(JEAN-MARC VALLEE) 감독의 영화 ⌜WILD⌟는 질량이 보존되는 고통을 대하는, 가학적이지만 긍정적인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이를테면, 고통의 성질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방법이다. 영화 'WILD' 중에서 SCENE 고통없는 시간이 더 고통스러운 사람을 위한 ⌜WILD⌟는 작가 셰릴 스트레이트(Cheryl Strayed)의 실화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다. 영화 ⌜데몰리션⌟,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등으로 아카데미가 사랑하는 감독이라는 별칭을 얻은 영화감독 장 마크 발레는 이 소설을 읽자마자 영화를 제작하기로 결심했고, 주연으로 셰릴 스트레이트역을 연기한 배우 리즈 위더스푼(Reese Witherspoon)은 비행기 안에서 시나리오를 한 번 읽고는 곧바로 출연을 결정했다고 한다. 대중예술가 두 명의 공감에서, 그만큼 많은 사람이 고통에 대처하는 셰릴의 방법에 동의할 것이라는 믿음을 엿볼 수 있다. 대중예술이란, 더 많은 삶에 한 뼘 더 가까운 이야기를 나누어 내고, 최대한 많은 공감을 낳을 때 가장 빛나기 때문이다. 영화는 셰릴 스트레이트의 인생 중 가장 깊은 고통의 골짜기에서 시작된다. 진심으로 자신을 사랑해줬던 어머니의 죽음과, 마약과 섹스로 망가져버린 그녀에게 애정 어린 잔소리를 해주던 유일한 사람인 남편과의 이혼, 그 지점에서 셰릴은 두 가지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더러운 존재로 만들어가는 길과, 다시 한번 자신의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길. 선택의 기로에서 그녀는 마지막 희망을 품고 여행을 떠나기로 한다. 셰릴의 여정은 대략 4,285km의 태평양 종주길(THE PACIFIC CREST TRAIL)에서 다시 시작된다. 멕시코 국경에서부터 캐나다 국경 너머까지 이어지는 종주길은, 아홉 개의 산맥과 사막, 황무지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여정. 무거운 배낭을 매고, 뙤약볕아래 걷는 그 자체가 고통인 곳이었다. 셰릴 역시, 온갖 욕을 해가며 종주길 한 가운데 서있는 자신을 원망한다. 그리고 항상 ‘언제라도 그만 둘 수 있어’라는 생각을 되뇐다. 영화를 몰입해서 보다 보면, 이런 의문이 들기도 한다. ‘저 사람은 도대체 왜 고생을 사서 하는 거지?’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아프고 고통스러운 통증으로 가득 차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살다 보면 그런 시절이 온다. 아무런 고통이 없는 시간이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 이를테면, 사랑하는 연인과 헤어졌을 때, 무엇인가에 집중하거나, 한껏 놀면서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 시간을 피하는 행동과 같은 것이다. 생각해보면, 사람에게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 시간이 없다는 건 아주 가학적인 일. 물론, 몸과 생각은 분명 쉬어야 할 때가 있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그럴 때가 있다. 몸과 생각이 제발 멈추지 않고 일을 했으면 하는 시간. 영화의 끝자락에선, 아무 일도 없는 시간에 찾아오는 통증이 더 많이 아픈, 그런 시간을 지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이 가학적인 방법에 동의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만다. LAST SCENE 결국에 우리는 셰릴은 황량한 길 한 가운데서 자신의 아름다움을 발견해간다. 이 영화의 시놉시스만 보고도 예상 가능했던 깨달음의 순간, 그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깨달음은 이미 알고 있던 것을 온 몸으로 경험하는 순간을 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보통의 경우 우리가 이미 정답을 알고 있는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셰릴이 여행을 통해 깨달은 것들이 사람들에게 많은 울림을 주는 것은, 그녀가 온 몸으로 겪어낸 깨달음이기 때문이다. 행복은 각자의 마음 안에 있다는 것이 나의 변함없는 믿음이다. 달라이 라마 티벳 성인의 말처럼, 우리가 그렇게도 찾고 싶어하는 것들은, 이미 우리 안에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 사실을 온 몸으로 깨닫기까지는 저마다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아마도 그건 신의 선물일 것이다. 정답을 너무 쉽게 알아버린다면, 언제 우리가 스스로와 오롯이 마주하는 시간을 갖겠는가. 우리는 결국에,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정답을 위해, 멀리 여행해야 하는 운명을 타고났다. 더 많이 만나고, 겪고, 사랑하고, 춤추어야 겨우 자신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되는 그런. 글 | 아트래블 편집부사진 | 영화 'WILD' 스틸컷, 자료실